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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ul 17. 2016

폭식

드디어 제대로 된 밥을 먹었으니까.

 오늘은 어정쩡하게 모두가 저녁을 먹고 난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숨을 쉴 틈도 없이 외쳤다. '배고파요. 오늘 저녁 뭐 드셨어요?'

 가스레인지에서 뜬금없이 웬 블루베리 잼을 만드시던 엄마가 대답하셨다. '밥. 고기랑 된장찌개랑 먹었어.'


 나 덕분에 분주하게 냉장고에 들어가려 하던 미지근한 반찬이 도로 나와 식탁에 놓인다. 급한 마음에 대충 손을 씻고 푹푹 밥을 푸며 엄마에게 말한다. '아, 진짜 배고픈데. 오늘 밥 많이 먹을 거예요.'

그리고 엄마의 한마디. '폭식하면 다 옆구리로, 허벅지로 간다.'


 이번 주말도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사실 하나도 쉬지 못했다.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해 초침의 바짓가랑이라도 질질 끌어볼 심산으로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젖 먹던 힘까지 짜서 해볼 텐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 더욱 분했다. 심지어 지금까지 제대로 충분한 끼니도 채우지 못한 채 쓰린 속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더 기운 빠져 속을 허하게 만들었다. 돌아보니 이상하게 오늘은 무언가에 잔뜩 쫓겨서 즐거울만한 일들을 죄다 눈 앞에서 놓친 날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했다. 덩달아 날씨는 우중충하니 저기압에 나를 무겁게 짓밣았고, 그 덕에 턱 하고 숨 막히는 공기가 온 감각을 쭈뼛쭈뼛 소름 끼치게 했다. 그냥 지쳐서 아무 데나 쓰러져 온갖 몸부림으로 땅을 퍽퍽 때리며 떼를 쓸 수만 있다면. 금방이라도 떨어지려는 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엉엉 울기라도 했으면 시원할 것 같았다.


 숟가락, 젓가락을 양손에 나눠 쥐고 부들부들 억울해하던 참에 엄마가 따뜻하게 데운 고기를 가져다주셨다. 된장찌개는 짰고, 고기도 간이 좀 셌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맛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조건, 그냥 일단 내 입속에 쑤셔 넣어서 급히 삼키며 음식물을 넘기는 것 자체가 급했다.

 생각해보면 밥을 먹을 때는 그런 게 있다. 맛이 좀 떨어지는 음식이어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시간으로 채워져 식사를 한다면 조금만 먹어도 너무 배부르고 기분 좋게 포만감이 오르는데, 이렇게 하루 종일 퍽퍽하게 지내다가 결국 혼자 왕창 몰아서 밥을 먹는 날이면 먹어도 먹어도 허전했고, 배가 차질 않는다. 살기 위해 맛도 모른 채 먹는 사료가 기분 좋게 포만감이 오를리가. 역시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투박하게 푼 밥 한 숟갈에 아까의 업무를 얹어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고, 반찬 한 젓가락에 아까의 그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함께 목구멍으로 넘겼다. 내 한 입에 오늘 하루를 싹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아무리 삼키고 넘겨도 배가 불러오지 않았다. 계속 허기가 졌다. 내일이면 분명히 배가 아파서 고생할 텐데도 허겁지겁 그냥 삼키기에 바빴다.


 밥을 그렇게나 거칠게 다 해치우고서도 찐 감자에 방금 만들어진 블루베리 잼을 찍어 입안으로 옮겼다. 너무 급하게 먹었나 밥을 먹으면서도 숨이 차올랐는데  달달한 그 맛에 이제야 긴장이 풀리며 어깨가 얼얼하게 살아남을 느낀다. 희한하게 맛있는 걸 먹으면 어깨 근육이 뭐라도 된 양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 든다. 맛있다. 이제야 조금 오늘의 급한 일을 다 마쳤다는 희열에 몸은 풀어지고 오른손에 쥐어진 포크가 조금씩 기운다.


 반찬을 치우고 잔해만 남은 그릇들을 보며 싱크대로 옮기고 설거지를 시작하려는데 고무장갑에 물이 새서 손가락 상처를 감싼 반창고가 축축해져갔다. 아- 분노의 설거지. 벅벅벅. 설거지를 다 하고 나면 아까 그 블루베리 잼에 감자나 다시 찍어서 먹어야겠다. 옆구리랑 허벅지를 결국 이렇게 마지막까지 두둑히 챙겨줘서 참... 기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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