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잡아야 해. 더위사냥을 하자. 더위사냥...
그 새벽 유난히 진득한 공기에 숨이 막혀 눈을 떴다. 이젠 날씨가 너무 더워져 모든 열기가 떨어지는 시간인 새벽에도 목덜미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어진다. 답답했다. 분명 이럴까 봐 미리 샤워를 다 하고 잠에 든 것인데 하루의 아침을 채 맞기도 전에 푸욱 젖어버린 등줄기의 옷을 펄럭이며 나를 둘러싼 미지근한 공기를 흘려보낸다. 그러나 흘려보내고 끌어당기는 모든 공기에도 상쾌함이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왠지 이럴 땐 시원하게 얼기 직전인 생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 우리 집엔 그렇게 시원하게 얼려놓은 얼음도 없고, 사러 나갈 편의점에 가는 길도 너무 귀찮다.
등에 붙어 펄럭이던 손을 목으로 끌어 이번엔 목덜미의 옷을 끌어 펄럭거리며 다시 바람을 끌어모아본다. 원랜 베란다가 아닌 곳에서 이불이나 옷을 터는 것을 싫어한다. 괜히 먼지에 예민한 호흡기가 연신 재채기를 하게 되는 게 괴롭다. 이 놈의 재채기를 생각하니 온통 더워서 열이 펄펄 나는 몸에 갑자기 닭살이 돋는다. 열이 갑작스럽게 빠졌다가 다시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옷을 펄럭이던 손을 바닥에 툭 내려놓고 휴지를 집어 코를 패애앵- 하고 푼다. 계절이 매일매일 바뀌어는 과정 속에도 비염은 정도가 없음이 영 괴로워 인상을 쓰게 된다. 역시 그랬다. 갑자기 내가 옷을 펄럭거려 먼지도 일었을 거고, 온도도 갑자기 내려서 몸이 추워진 거다. 아- 난 아직 정말 더운데. 고개를 돌려 서랍에 항상 준비하고 있는 하얀 일회용 마스크를 부스럭 부스럭 꺼내서 손에 쥔다. 좀 구질구질한 기분이 든다. 급한 김에 그냥 대충 코라도 막아 얼굴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면서 먼지를 차단해주면 일단 콧물은 멈추니까. 숨이 좀 막혀도 이러고 자다가 아침을 맞아 정신이 들면 놀랍게도 매번 마스크는 알아서 벗어져있다. 무조건 일단 생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도 준비되어 있다는 게 왜인지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언제 마스크를 벗긴것일까. 분명 잠이 들기 전까지는 참을만 했는데 그렇게나 답답했던걸까. 어쨌든 지긋지긋한 콧물과 재채기에 시달리는 게 여간 귀찮다. 적당히가 없는 선택지를 고민하다 결국 하얀 마스크를 쓰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다리에만 이라도 선풍기를 틀까 했지만 그냥 포기한다.
숨은 좀 막히지만 점점 패턴을 잘 잡아가는 호흡에 만족하며 날 짓누르는 더운 열기를 이겨내고 있다. 뭔가 너무 무식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모양새에 기가 막혀 손등을 이마에 갖다 대고 눈을 감는다. 다시 푹푹 올라오는 더위는 기껏 열심히 옷을 팔락거리며 식혀놓은 등줄기를 다시 꿉꿉하게 덥혀간다. 더위사냥, 더위사냥이 필요해. 더위사냥은 어떻게 하는 거지? 어드벤처 게임처럼 뭔가 퀘스트가 주어지고 적당한 보상에 따라 더위사냥을 할까. 아니면 내 더위 사가라- 하면서 더위 판매실적에서 실적 왕으로 뽑히면 더위사냥인가? 여행 가고 싶다. 피서를 가면 더위에 쩌든 일상을 피하러 가는 거니까 그게 더위사냥에 가장 가까울까. 영 재미없고 이상한 생각을 뒤로하고 침을 꼴딱 넘기며 삼각기둥의 그 아이스크림을 생각한다. 반으로 똑 갈라서 나눠먹어도 맛있고, 한쪽을 쪼오옥- 빼서 혼자 다 먹어도 맛있다. 좀 너무 달아서 먹고 나면 목이 말라 물을 찾게 되는 그 아이스크림. 반으로 똑 자를 때 단 한 번도 정말 반으로 갈라진 적이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은 꼭 부족한 양이었고 그래서 난 친구와 먹을 때 절대로 갈라서 먹지 않았다. 괜히 서로 기분 상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럼 누구와 나눠먹었었지? 그래. 아빠였던 것 같아. 아빠는 항상 내게 큰 부분을 양보해 주셨었지. 본인은 적은 양을 드시면서도 뿌듯해하셨던 것 같다. 내가 큰 부분을 받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만 해도 기특하다며 엉덩이를 도닥거려주시던 아빠. #아빠와 딸 #더위사냥 #성공적
지금은 내 입을 단단히 막고 있는 마스크 때문에 더위사냥이고 뭐고 그냥 숨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코가 막혀서 숨이 막히나, 마스크를 쓰면서 숨이 막히나 이래저래 마찬가지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홧김에 그냥 벌떡 일어나 마스크를 쓰레기통으로 처박아버린다. 좀 아까운데. 콧구멍으로 서믈서믈 느껴지는 마스크를 썼을 때보다는 좀 더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휴지를 잡아 코 끝이 연골까지 빠져라 세게 푼다. 머리가 띠잉 거리며 난 이 새벽에 뭐하고 있나 시선을 잃는다. 내일의 일에 앞서서 벌써 시루떡처럼 지쳐 헐떡거리며 또한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더위가 야속하다. 더위를 잡아야 해. 더위사냥이 필요해. 잡자.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