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언제쯤 철이 들어 어른이 될까.
아빠께선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철이 든다는 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 말씀 이후에 오는 내용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그래서 네가 이젠 철이 들고 많이 컸구나.' 또는 '어느 정도 다 큰 녀석인 줄 알았더니 넌 아직 한참이나 멀었구나.' 이렇게 말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다. 난 늘 주위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실망을 주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늘 거절하지도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어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 몸의 흐름이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질 때도 그저 '괜찮을 거다', '믿어주시니 그걸로 충분하다',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등등등.. 그러한 생각으로 살게 되다 보니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에 대한 마음가짐이 수동적으로 변해감을 느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들은 '내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가는 늘 항상 혹독하게 다가와서 나에게 갖은 부담과 절망으로 안기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탐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해서 차라리 오기로라도 망하던지 잘되던지 어쨌든 끝은 보는 그런 모습. 내가 그래도 이젠 내 의견을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어떠한 자유선택에 대한 갈망.
하지만 난 정말 미성숙한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말을 조리 있게 또는 상황에 맞게 하는 그런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물론 둘 다 해당되겠지만) 내 솔직한 마음을 말하면 모두가 꺼려하고 실망해하기 시작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공개하게 된 셈이다. 이제는 이전과 다르게 그저 '예예 당연하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볼게요.'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내 솔직한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나는 아직 납득할 수 없으니 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뉘앙스와 맘에도 없는 위선의 가면으로 상대에게 무조건 긍정하지 않는 모습 따위를 보였을 뿐이다. 그랬더니 바뀌어 버린 나의 모습에 모두가 쯧쯧 혀를 찼다. 그리고 불쾌해했다.
그러면서 그 반면 난 모든 상황을 보며 드디어 '혼자' 삽질해야 하는 상황에 온 것인가. 정말 내가 '선택'을 하는 그런 상황이 온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미묘한 해방감도 불뚝 머리를 쳐들고 존재감을 알렸다. 생각해보면 본래 '내 생각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은 주위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도 의지를 보이겠다는 그런 일들을 말하는 상황에 해당하는 것이지, 모두가 긍정하고 환호하는 상황에서 해당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물론 이러한 나의 행동이 무조건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리고 몹시 내 마음도 이미 불편하다. 예전엔 시키는 대로 해도 불편했고, 지금은 내 솔직한 마음대로 해도 불편하다. 모든 것이 다 엉망이 된 것 같아서 괜히 내 본심을 말한 건가 싶었다. 차라리 예전엔 한쪽이라도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이렇게 해방감 이후에 바로 덮쳐오는 후회가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지. 내가 생각한 내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선택에 대한 막중한 무게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건가 싶었다. 안 그래도 소심한데 평소보다도 더 소심해지고 눈치보기 바빠졌다.
나는 내 선택의 여지를 남겨달라고 외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수동적인 삶의 고민 없음, 안락함과 경험 많은 분들이 내려준 '돌아가지 않는 길'에 대한 달콤한 꿀을 빨며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가 고전을 읽으며, 선조들의 지혜를 참고하고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질과 본능은 나의 선택과 능동적인 면을 갈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면에서 부드럽고 합리적인 모습을 가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싸움이 필요할까.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것일까. 도대체 언제쯤 어른이 되는가 외치는 나의 모습에서 아직도 젖비린내 풀풀 풍기며 세상을 제 멋대로 살고 싶은 악동의 부아가 보인다.
철이 든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어지러워할까. 과연 나에게도 언제가 주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