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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ul 02. 2016

아르바이트생의 단상들.

 pc방 아르바이트지만 나도 우리 집 귀한 딸내미다!!!

pc방 주말 알바 2개월 차, 역시 오늘도 나는 황금 같은 주말을 포기하고 출근했다. 그나마 내가 근무하는 시간은 저녁 5시부터 11시까지라서 열혈 초딩 게이머들은 이미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을 시간이니 다행히 비흡연석은 거의 비어있다. 아니 저번에 평일 낮에 근무하는 언니 대신 대타를 나갔었는데 정말 치여 죽을 뻔했다. 무슨 갓난이들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게임을 하는지 여기가 pc방인지, 공 차는 운동장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심지어 100원, 200원씩 여러 번 왔다 갔다 거리며 달랑달랑 5분, 10분씩 추가하는가 하며. 컵라면이 맵다고 원래 근무하는 '누나'는 컵라면을 안 맵게 만들어주는데 '저 사람' 혹은 '저 아줌마'(내가 더 어리거든 얘들아^^)는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반 울며 짜증을 내었고, 온 초딩들의 눈총을 받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과자는 온갖 부스러기를 흘려놓고... 애기들이 빠지는 시간이 지나자 온 진이 빠져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더라. 하-


이런이런 귀여운 녀석들, 아무리 화가나도 소리지르면서 욕하는거 아니야!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시간엔 그냥 본인들끼리 리니지를 많이 열심히 하시는 pc방 사장님 친구분들 네 분과, 그 뒤로는 열혈 청년 게이머들만 있기 때문에 그나마 수월한 시간이다. 각 자리마다 참사가 일어난 재떨이를 치우는 것만 빼면 말이다. 재떨이 닦을 때도 잘못하면 손이 베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가끔 키보드가 안돼요, 마우스가 안돼요 그러는 메시지가 오면 본체 뒤에 빠진 선들을 연결하면 된다.그런데 하나 조심해야 할 일이 생겼다. 언젠가부터 아들과 같은 아이디로 충전금을 함께 쓰는 아저씨가 자꾸 아는 척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저번엔 퇴근 한 시간 전에 바닥을 물걸레질하고 있는데 소리 없이 내 귀로 와서 작은 소리로 '안녕!' 하고 인사하는데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 진짜 돈 벌어먹기 더럽게 힘드네! 도저히 손님이랍시고 이상한 갑질을 하는데 웃어줄 수가 없다. 온갖 성질머리가 올라와서 그냥 사람들 다 들으라고 '꺄아아아아!!' 냅다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모으기 성공. 그 뒤로 이 아저씨는 그냥 내 눈치만 보는 듯하다. 아무래도 재수도 없고, 기분도 나쁘다. 당신 아들도 내가 뻔히 아는데 가만히 있을까 봐?


아 그래도 이곳으로 알바하러 올 때마다 기쁨이 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대하는 앞 타임 오빠가 상당히 훈훈하다는 것. 쌍꺼풀 없는 진한 눈매에, 오뚝한 콧날, 그리고 내 이상형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주셔서 내게 힘이 된다. 아 역시 어디나 오아시스 같은 것은 존재하는 듯. 저번엔 엑셀 파일 보내준다며 번호와 이메일 주소까지 교환했다. 내 친구들도 알바하다가 금방 연애하던데 나 같은 여초과를 다니는 애들은 다 이렇게 연애를 시작하는 걸 거야. 난 CC는 평생 못하겠다.


아 그나저나 앞 타임에 정산 빵꾸는 안 났나 몰라? 요즘 최저시급이 4.320원인데 사장님은 3개월까지는 수습개월이라며 3.900원으로 하자셨다. 그 이후로는 한 달이 지날 때마다 100원씩 오른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정산에 빵꾸나면 각자가 채워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다. 한 시간 일해놓고 컵라면 하나 계산 잘못하면 내 시급은 3.900원에서 2.900원으로 깎인다. 맨날 정산 때 빵꾸난 돈 채우느라 일하기 바쁘고 엄청 스트레스가 쌓인다. 거기다가 어쩌다가 돈이 남아버리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돈이 남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채우는 게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 음료수가 웬만하면 다 1.000원씩인데, 코카코-올라만 1.100원이다. 얘 때문에 자꾸 몇 백 원씩 비는 느낌이다. 내가 그렇게 확인을 수 도 없이 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빈다. 진짜 가슴이 찢어진다.

너란 코카코-올라...

이렇게 쌔가 빠지게 한 달 알바해도 20만 원을 벌 수가 없다. 차비가 10만 원 이상은 당연히 나가고, 핸드폰 요금 5만 원 정도, 학교에서 점심 사 먹고 이래저래 과제 때문에 복사, 제본비 다 합하면 용돈 꼴랑 몇만 원으론 치킨 사 먹는 것조차 후달린다. 그나마 우리 학교 학식이 밥 많이 주고, 맛있고, 저렴해서 한 달을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네 꼬마 한 명 과외를 하고 있어서 조금 보탬이 된다. 초등학생 이라서 큰 수입은 없지만 말이다. 어서 빨리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수입이 안정적이 되면 요즘 유행이라는 환율 적금도 들고, 좀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부모님 용돈도 좀 드리면서 살고 싶다. 아, 학자금 상환해야 하는구나.



마침 저쪽에서 비회원 커플 손님이 후불 계산하러 걸어다. 정신 차리고 계산해서 오늘은 빵꾸 안 내야지. 그런데 불쑥 카드를 내민다.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현금결제만 되고 있어요.'

'아.. 요즘 카드기 없는 가게가 어딨어요? 좀 장사 너무 막 하시네... 이거 신고해도 되는 사항 아니에요?'

여자친구 앞이라고 의식하듯이 대뜸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 내가 알바지 사장인가.

'죄송합니다.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조치하시라고 전해드릴게요.'

'아... 진짜... ' 하며 천 원짜리 세 장을 탁하고 던진다.




...음.. 괜히 울적하네..엄마보고싶은걸?

그래... 빨리 집에 가서 다운받은 영화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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