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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un 18. 2016

도저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들.

그러나 너의 그러한 삶을 동경했다,


 '때르르르르르릉-'

 오전 5시 10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기똥차게도 힘찬 소리로 울어재낀다. 내 손의 반절도 안 되는 조그만 시계는 아침마다 가장 이기기 힘든 존재다. 무거운 팔을 들어 더듬더듬 고성을 질러대는 녀석을 잡아 스위치를 내리고 나서야 쿵쿵쿵 아프게 발딱거리는 심장이 느껴진다. 하루의 시작부터 왠지 화가 솟구쳐 손등을 이마에 대고 한숨을 푸욱 쉰다. 시끄러운 알람 없이는 절대로 스스로 깰 수 없는 나에게 온갖 핀잔을 주다가 아직도 손에 붙들려서 재깍재깍 잘도 도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갑자기 귀로 들어오면 그때부터 조금씩 오늘 하루에 대한 생각이 펼쳐진다.  


 얼른 화장실로 가서 슬리퍼를 발 끝으로 살짝 돌려 신은 뒤, 치약을 칫솔의 반만 짠다. 예전엔 치약거품의 양이 세균과 싸울 치약 병사들이라고 생각했다. 뭐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생각인데 몇 년째 매일 이 시간에 반복해서 생각한다.  어쨌든 거울을 보며 치약 병사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더 꼼꼼히 고군분투하다가 과한 욕심에 결국 피를 본다. 전동칫솔을 사용하면 좀 나으려나. 세안을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다시 거울을 본다.


'이런 몰골까지도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실없는 소리를 조용히 뱉는다.


'맘 같아서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화장하고 싶다. 적어도 20분 정도는 더 잘 수 있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다 다시 한번 내 몰골 앞에 거울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과 인스턴트커피스틱을 집어 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밖을 나가기 전 다시 거울을 확인한다. 전반적으로 튀거나 미묘한 스타일링은 아닌지 신발까지 체크하고 전체 실루엣을 확인하면 그냥 뛰쳐나간다. 뛰쳐나감과 동시에 새로운 면으로 못생겨지는 나를 알지만 그냥 포기하고 씩씩하게 뛰기로 한다. 지각은 나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다. 버스의 시간을 맞춰서 정확히 출발을 하지 않으면 이동시간 두 시간 동안 복통의 시간이 된다.


 '좀 지각하면 어때, 큰일 날 일도 아닌데. 쩔쩔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괜찮을 테니까 조심히 가.'

그래서 항상 너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순간, 정말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너에게로부터 온 안도감에 온몸 힘이 빠져 든다. 축 늘어진 손 끝으로 메신저 답장을 보낸다. 내가 유일하게 쉼을 얻는 시간은 너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면조차 편히 마음먹는 게 너무나도 어렵던 시간이 있었다. 정말 미련하게 열심히 깐깐하게 살아서 조금 나를 가혹하게 해야 맞는 것인지 알았다. 나는 성과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 정도의 각오와 생활패턴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진 너를 속으로 비웃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너의 그러한 삶을 동경했다. 함께 계속 지내고 있다 보니 자유로움 안에 너만의 합리적인 사고가 있었다. 나의 수동적 삶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와 같이 지내는 그 시간들 동안 나는 너의 일부가 되길 바랐고, 온전히 서로가 정말 '서로'가 되길 바랐다. 너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정말 고요한 공기 같았다.


늘 분주하고 복작거리는 지독한 사당역을 지나 한참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가방 속의 미지근한 생수와 인스턴트커피스틱이 떠올랐다. 시간이 꽤 이르기 때문에 영업을 시작한 카페는 없더라도 나의 기력 없는 하루에 맥박을 뛰게 하기 위해 그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 든다. 커피를 물에 타서 뚜껑을 닫아 열심히 흔들며 혹시라도 뚜껑 밖으로 새어나오지는 않았는지 중간중간 확인하다가, 미묘하게 올록볼록 생긴 거품들에 은근히 기분 좋아하며 거품들을 호록 다 삼켜버린다. 생수병의 뚜껑을 닫고 책상 위에 탁 올려놓는다. 아침이라 덜 풀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크게 한 숨 들이켜 오늘의 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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