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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Sep 30. 2016

저녁과 새벽은 크게 다르지 않은 푸름이 있다.

네 빛은 항상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네 빛은 항상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너와의 처음은 선선한 새벽의 푸른빛 사이로 가득 서려있는 시린 공기 같았다. 한 숨 가득 들이쉬면 코 끝을 짠하게 채우는 그런 온도를 가진. 해가 지는 저녁과 해가 뜨는 하루에 있어서의 시작인 새벽은 크게 다르지 않은 서스름한 푸름이 있다. 네 빛은 내게 그러한 푸름들을 동시에 보내는 듯 시간의 사이의 간격을 잊게 했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 속에 서둘러 오는 아침과 밤은 늘 야속하다. 하늘의 빛과 어두움이 하루의 일정 속에서 극명하게 나뉠 때 그 사이에서 잠시 만날 수 있는 새벽과 저녁의 서로 닮은 듯 다른 모습은 아쉬움을 만든다. 그렇지만 꼭꼭 잡아 붙들고 싶은 내 마음은 놔둔 채 금방 또 사라져 버린다.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준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을 때 조용히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우리 집 안까지 비추이는 빛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날씨가 맑을 때나 흐릴 때, 봄과 가을 그리고 여름과 겨울. 이렇게 계절과 날씨 안에서 흘러오는 하루의 긴 시간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 십 가지 색채의 빛이 있다. 구름 사이와 나무 그리고 건물 사이를 지나서 내게로 오는 그 빛을 보는 게 좋아서 가만히 그 빛을 눈에 담았다. 나는 그저 같은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수 없는 색채의 끝을 잡고 아쉬움을 매일매일 느꼈다. 오늘의 이 빛은 내일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가끔 그리운 네 빛을 흉내내기 위해 눈꺼풀을 실 같이 뜨고 시야를 흐리게도 만들어 보지만 꼭 비슷할 듯 아닌 노력에 그래서 어쩔 수 없기에 더 그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네 빛을 아주 예상치 못하게 마주 만날 때가 있다. 눈을 통해 색감으로 만날 수도 있었지만 어떤 이의 표정과 말투에서도 만나고, 물을 마시다가 컵 속에서 투명히 비추이는 반짝거림에서도 떠오르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도, 그냥 밤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마음으로 와 닿을 때도 있다. 그리고 우연히 재생시킨 노래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냥 문득 만났다는 그런 점이다. 그렇게 언제 다가올지 모르지만 가끔 한 번씩 정말 내 맘에 포옥 들어와 주는 그런 그리운 감각을 만난다. 어렸을 적에 처음 그리움을 느낀 것은 '빛'이었지만 그 감정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나의 '삶 안의 감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에야 조금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오늘 노래를 하나 듣게 되었다. 가수 윤상 님의 곡 '배반'이라는 노래인데 노영심 님이 피아노 연주로 풀어내었다. 왠지 각 음마다의 반짝이는 빛이 있었다. 소리로 듣고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 속에서 새벽과 저녁을 느꼈던 푸름이 함께 존재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https://youtu.be/2JDIFyWAajY

노영심 - 배반



 소리가 건반을 통해 나온 후 잔음으로 퍼지며 파장을 가지는 음이 조화를 이루는 게 어릴 적 하루 종일 눈에 담았던 시시각각 변하는 그 빛과 닮았다. 원체 피아노를 치면서 이러한 감각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는 않으나 이렇게 완벽하게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 못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움에 설레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도저히 없다. 지금 이 시간이 비록 내가 좋아하는 푸름한 저녁은 지났으나 왠지 그래서 다행이다. 오늘은 오늘따라 더 밤이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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