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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Aug 05. 2016

건망증

하루에도 열두 번씩 깜빡거릴 때

건망증


원체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편 그 정도였고 처음 만난 이들의 이름도 곧 잘 기억해두고는 다음에 만날 때 그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편이었는데...


요즘엔 왜 그러는지 자꾸만 깜빡깜빡하는 게 여간 일상이 되어버렸다. 중요한 일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에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려 괴롭기만 하는 빈도가 점차 잦아짐을 느낀다. 그리고 대화를 할 때 기억이 나지 않는 단어는 또 왜 이리 많은 건지.. 왜 그럴까.. 요즘 적잖이 대화 중 길을 잃어버리고 흐름을 못 틔워서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가 생기면 나의 오른손을 꼭 쥐고 관자놀이로 꽁! 하고 알밤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 불뚝불뚝 솟아난다. 휴.


직업 특성상 이름과 얼굴을 잘 외우고 기억해야 하는데 왠지 안면인식 장애라도 있는 양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서 내 마음속에 표정 없이 이미지도 없는 얼굴들이 불안한 낯면으로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듯해 섬뜩섬뜩하기만 하다.


왜 이리 정신을 못 챙기는 건지.. 아니면 나 스스로 나태함의 반증으로 올라오는 증거들인지 참 이해할 수가 없는 요즘이다. 여름이어서 더위를 먹었나 보다. 하고 넘기기에는 꽤 오래 지속되었던 일인지라 머쓱해지고,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안개처럼 뿌옇게 화-악 흐트러지는 잔상만 흘러 다니는 것 같다.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아직 한참 청춘인 이 나이에 총명끼가 떨어져서 큰 일이다. 어떻게 하면 컴퓨터처럼 이라도 디스크 조각모음을 하듯 기억을 정리하고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그래도 물건은 안 잃어버리는 선에서 일단 스스로 위안을 삼아서 초조함이라도 달래야 할까. 왠지 요새 스스로가 초라해지고 더 구멍이 뻐엉 뚫린 블랙홀이 된 것 같아 왠지 조금 슬퍼진다.


하 방금 뭐하려고 했었지....? 생각하자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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