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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ul 10. 2016

학생을 보니까 내 딸 같아서 그래,

우리 어머님들의 마음

학생을 보니까 내 딸 같아서 그래,


 요즘 방학을 맞아 새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있다. 어느정도의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면서, 기술의 숙련도와 경험적인 움직임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일을 하는 곳이다. 나와같은 대학생부터 우리의 엄마뻘 또는 그 이상이신 어머님들까지 모두 함께 말이다.


 일을 할 땐 정신이 없이 하다가 점심시간이나 쉬는시간이 되면 각자 인사도 하면서 즐거운 담소의 시간을 보낸다. 아직 나는 이제 처음 와서 어색한지라 그냥 구석에서 쉬고 있었는데 한 어머님이 오셔서말을 걸어주셨다.


'학생은 오늘 처음보네~ 이름이 뭐야?나이는?'

'안녕하세요! ###입니다 스물다섯이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 우리 딸내미도 스물다섯인데, 아이고 여기서 이렇게 딸을 만나네!'


 이렇게 시작된 한 어머님으로 인해 순식간에 모두에게 소개가 된 나는 재차 이름과 나이를 설명드리며 얼굴을 알리게 되었고 각종 맛있는 간식도 주시는 어머님들의 무한 챙김을 받게되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 마치고 다시 들어간 작업장은 나에게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딸이라는 마법같은 한마디로 순식간에 내가 많은 어머님들의 딸이 되었으니 왠지 편안해졌고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것같은 그런 좋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님들께서 이렇게 대해주시는 것은 물론 서로 분위기를 생각해서 친하게 표현을 그렇게 해주시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서로 공유되기 때문에 나에게 지금 마음을 주신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쭈뼛거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감사했다. 내가 예쁜 모습을 보인것도 아니고 그저 일을 같이 하게된것인데.

 이 어머님들께도 감사했지만 이분들의 자녀들에게도 고마웠다. 얼마나 예쁘고 장한 자녀들이면 비슷한 대상에게서도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보다 앞서 더 이유없이 존재만으로도 큰 은혜를 주시는 부모로서의 어머님들의 사랑이 가장 크겠지만 말이다.


'우리 어머님들에게 자녀들이란 무슨 의미일까..'

단 한번도 본적없는 사람에게 단지 본인의 딸의 또래라는 이유로 정말 어머니의 모습과 애정을 주시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끊임없이 투영되는 사랑의 모습에 나는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아서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궁금했고 생각이 이어졌다.


 얄팍한 내 생각으로는 어쩌면 어머님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기준점이고 가장 큰 가치 그 이상의 것이겠다 싶었다. 사실 내가 이분들의 딸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시고 챙겨주실 필요는 없을텐데 말이다. 나를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자식에대한 사랑, 그리움, 그리고 마냥 잘 되고 건강했으면 하는 순전한 바람 등.


 그러면서 우리 가족들 생각도 났고, 나에게 마음을 주시는 많은 어른분들이 생각이 났다. 물론 다 같은 이해관계 속에 있진 않지만 모든 마음은 귀하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랑을 받는 입장으로 어떻게 더 진실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아직 나는 미련한 나이이고, 다 알 수없고 부족한 딸이지만 이렇게 만나는, 느끼게 되는 부모님의 큰 사랑으로 또 열심히 힘을 내어 살 수 있을것같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자식의 의미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로 남을것같다. 하지만 앞으로도 더 고민해보고 싶고 그 마음을 나도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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