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른. 우리 모두의 속사정.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보면 너무나도 당연, 단순하게도 '생존. 즉 먹고사는 것.' 일 것이다. 우리가 '가족'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를 '식구(食口)'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생존'에 대한 움직임은 가장 인간의 본성과 본능에 밀접한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직업의 수가 많지도 않았고 촌락의 구성을 이어가던 농경 사회 그때는 식구가 많을수록 일꾼이 많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 힘과 경제적인 이득으로 이어지는 일 이었다. 근면성실함으로 모두가 바지런하게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자연이 주는 소득으로 삶이 이어지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현대사회는 일단 사회의 구조와 구성이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곳곳에 사람들이 맞물려 구성되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와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컴퓨터만 보아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크게 나눠지고 그 안에 하드웨어는 하드웨어대로,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대로 수많은 분류로 각각 그 역할에 충실해야 정상적이고, 편리한 구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거대한 기계와 같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도 그만큼 적재적소에 맞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나의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내가 잘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항상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각자의 갈 길을 위해서 놀고, 쉴 시간도 많이 포기한 채 학교와 학원을 수 없이 돌면서 '어딘가에는 쓸모 있는' 포맷을 갖출 준비를 하고 있으며, 성인들까지도 아직도 직장과 학원을 수 없이 돌면서 '쓸모 있어서 살아남을' 포맷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심화되고,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일에 훌륭하고 빼어난 이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말이 쉽다.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을 다하는 그 순간순간에 우리는 수 없는 낙심과 쓴 감정만이 솟구쳐 오르고, 그 열심으로 인한 대가는 월 150만 원, 시급 6.030원으로 깔딱깔딱 넘어가는 숨을 간신히 붙잡고 살고 있다. (그만한 일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 취업이 두려워 점점 학력은 고학력으로 넘어가고, 그 사이에 각자의 인생에서의 시간은 지나간다. 각자의 삶을 채워갈 그 외로움들과 싸움들은 결실로 아름답게 마무리지어질 수 있을까.
우리의 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이고, 누가 구성하는 사회일까. 정작 구성원들의 다수가 외면받고 평가받는 이 사회에서 쓸모있어지기 위한 생존의 투쟁은 지금 우리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