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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Sep 09. 2016

엄마 나 요즘 있잖아요.

기대는커녕 걱정인걸요. 사람 구실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이런 거 말이에요

 엄마 나 요즘 있잖아요. 꼭 기분이 묘하면서도 무기력한 게 딱 고3 때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대학 입학하고 나서는 그런 기분이 들었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당황스럽게. 그때랑 지금이랑 5년이라는 텀이 있어서 솔직히 '나'라는 주체의 속성 자체는 많이 바뀌었는데 자꾸 그때의 기분이 아주 기분 나쁘게 자꾸 날 짓누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통점이 몇 개 있는지부터 고민해봤는데. 다만 졸업 전 마지막 학기인 거랑, 여전히 피아노를 하고 있는 거. 딱 그거 둘 뿐이더라고요. 엄마, 아 진짜 피아노랑 이제 이별하고 싶다. 이거 다 얘 때문에 제 성질만 나빠지는 것 같은데. 그냥 컴퓨터 공부 계속할걸. 이젠 컴퓨터 다 까먹었잖아요. 완전 컴알못 다 됐다니까요?


이젠 이런거 뜨면 겁부터 나요. 우리동네 센터 조회해야겠당....



 아, 그래서 컴퓨터 얘기를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이번에 수강 신청한 과목 중에서 경제 관련 교양을 하나 신청했는데 무슨 자기소개를 카페에 써 올리는 게 또 점수에 반영이 된다네요. 쨌든 썼는데 이게 중요한 게 그냥 신상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고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엇을 준비하는지가 내용에 있어야 된대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지 알아요?

 이번이 마지막 학기인데 졸업을 하고 앞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대학원 진학이 목표가 될지,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게 될지 여러모로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중요한 시기라 사실 마음이 많이 시끄럽던 참이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고 더뎌서 자신감이 많이 사라지는데 불구하고 이번 학기에도 어김없이 학교를 등록하고 덜컥 와버렸네요
 
 저번 학기에 이 곳에 처음 저를 소개할 때는 나름 이러쿵저러쿵 자신 있게(?) 저를 소개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맞게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기다리는 불투명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마음이 자꾸 떠 버리고 왠지 정신 사납지만 그래도 이번 학기 잘 마무리하고 또한 새롭게 만들어나갈 날이 기대가 되기도...(블라블라블라)


 엄마 진짜 이거 내가 썼는데도 어느 정도 중2병 다시 재발한 것 같지 않아요? 어쩐지 교수님이 출석 부르시는데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가 요즘 목표니 말랑 오리야^^?'라고 뭔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제 출석을 대신하신 거 있죠? 딱 말씀하신 덕분에 뭔가 '백수생활 펼쳐진 6학년 복학생 언니'가 된 분위기였단 말이에요. 저거 주절주절 괜히 저렇게 쓴건가 봐요. 휴.. 솔직히 기대는커녕 걱정인걸요. 내가 사람 구실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막 이런 거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저번 달에 알바 구하러 열심히 백방으로 알아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결국 1년 동안 일했던 빵집 점주님과 카톡으로 나눴던 대화 내용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꿀벌의 뱃살과 능글맞은 표정이 바로 킬링파트




학원 파트타임 자리도 죄다 시간이 안 맞고, 6천 원 시급 받고 일하려고 찾아봐도 어렵던 때에 조금 민망했지만 연락드렸었는데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든든한 한 구석에 힘입어 결국 열심히 면접 보러 다녀서 지금은 학원 파트 구했잖아요.


눈 씻고 찾아봐도 멋들어진 응원의 단어라던가, 기운을 받을만한 어느 구석도 없는 아주 사실적인 점주님의 답장인데도 'ㅋㅋ반갑다.', '꼭 연락할께~~' 이 부분에서 다가오는 예전에도 받아봤던 익숙한 격려가 떠올라 마음에 스스로 막 감동받아서 힘도 나 안도감이 동시에 드는, 말로 표현이 어려운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결국 저에게 주어진 현실은 변하지 않을 거고, 엄마도 아시다시피 전 저답게 시기에 맞는 여러 가지 종류의 걱정을 계속 새로운 거리로 만들어가면서 열심히 앓는 소리를 내는 재능이 있잖아요? 그 걱정을 해결하는 칼자루는 제가 쥐는 셈이겠지만 중요한 순간순간의 찬스와 용기는 저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기보다는 항상 주위의 좋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나름의 크고 작은 성취도 경험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경험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아주 더 열심을 내야 할 시간 속에서 자주 엄마한테 이렇게 징징거리는 딸의 모습으로, 세상 고민과 짐을 다 짊어지고 사는 노인네처럼 못난 모습 많이 보여드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죽는소리만 하다가 시름시름 죽어가는 모습은 아니고 나름의 단계들을 잘 성취해 나가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그런 딸이 될게요.


 저는 나중에 엄마 호강시켜드릴게요. 저만 믿으세요. 이렇게 달콤한 애교 많은 한 마디도 사실 괜히 마음에 찔리고 자신 없어서 쉽게 못하는 뻣뻣한 딸내미지만 항상 감사한 그런 마음 잊지 않고, 사람 구실 열심히 하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그건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어요. 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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