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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Sep 12. 2016

건반 위에 손을 올릴 때면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새롭게 공부하게 된 실기 곡을 위해 많은 훌륭한 연주가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양 손의 열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너무나도 많은 음표들의 유려한 흐름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단 한 음과 한 숨, 한 동작도 그저 쉬이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저 고민과 부담, 그리고 욕심 없이 정말 그냥 그에게서 나오는 음악 자체를 순수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음악생활을 즐기고 싶기도 하다. 


 가끔 사람이 그런 기분을 받을 때가 있다.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 분명 내 마음과 감정선을 따라 흐르고 있지만 부족한 나의 말솜씨와 어휘를 빌려 표현하고자 할 때 정확한 맥락이 잘 실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느끼는 그때 말이다. 그런 순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저 손을 이용하여 무언가 건반으로 풀어내는 방법이 아주 좋은 표현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의 수단이 아닌 '음악 그 자체로 오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할 때 나는 대가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고 부족한 그냥 학도에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늘 답답함을 느끼게 되곤 한다. 그대로 똑같이 흉내를 내서도 안되고, 똑같이 낼 수도 없는 그런 모양새에 갇혀서 본래의 감흥조차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기에. 물론 이러한 이야기가 비단 음악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어떠한 것을 나누고 누릴 수 있음은 분명한 축복인 것 같다. 옛 고전을 읽던지, 노이징 이 심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는 영화나, 음악을 듣던지 그 자체의 감동 그대로를 그 시절 그대로 다 느낄 수는 없더라도 충분한 의미와 말로 표현 못할 값어치가 있다. 


 늘 아쉬운 점은 이러한 축복을 현재로서 충분히 누릴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지 않은 상황은 아닐까 고민하게 되기도 하다. 충분히 많은 예술가부터 새롭게 소화되어져 내가 편하게 듣는 명반들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값어치는 인정하면서도 나의 숙제와 압박감으로 인해 공부 거리, 숙제 거리로만 일단 후닥후닥 귀로 흘리는 많은 소리들이 참 아쉽고, 마음을 편히 갖지 못하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야박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 소리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옴은 또한 나를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발화체가 되어줌은 확실하다. 


 이 많은 소리들이 온 뭉텅이로 나를 까맣게 덮어버리듯 또한 나를 헷갈리고 갈피를 잃게 할 때도 참 많다. 그럴 때는 그냥 곤욕스럽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분명한 의미와 컨트롤을 위해 하는 움직임들이 맞을까. 아니면 기계적이고 성의 없는 움직임은 아닐까. 고민하면서 의욕이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 찰기가 사라진 밥알을 입에 굴리고 있는 느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그려내는 것은 생각보다 나의 노력과 성의만큼 표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면서도 나의 만족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반응이 천차만별일 수도 있다. 그만큼 순간순간의 실수와 컨디션에 굉장히 예민하게 파장이 일으켜질 우려가 있다. 늘 이 부분에서 항상 나는 상처가 되기도 했고 아직 스스로 해결을 다 끝까지 보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나 비생산적인 활동인가. 스스로 반발심에 속이 부르르 떨릴 때도 많았다. 그만큼 내가 부족하고 그만한 재능이 미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노력에 대한 보상을 피아노만큼이나 확실하고 황홀하게 받은 경험은 없을 만큼 너무나도 매혹적인 순간순간들을 지나오게 되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그림이 생각났다. 제목은 '관객들이 황홀해 하는 사이 연주자의 머릿속은'


 이제 내 삶에 있어서 건반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생각하는 연주를 연습할 날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에는 내가 꿈꾸었던 '그에게서 나오는 음악 자체를 순수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음악생활을 즐기고 싶기도 하다.'는 부분들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행운은 존재하겠지.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도 또한 정말 행복하고 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감동들을 가지고 갈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건반 위에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는 그 자체에서 각각의 소리들이 건네는 말들이 듣는 이도 행복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연습하고 나 또한 누리는 시간을 가지는 경험이 되었으면. 그래서 한편으론 어서 졸업을 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히 하는 연습을 할 기회가 아직 남아있음이 나를 안도하게 함을 알 수 있고 또한 그래서 더 감사한 날들이 되는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을 순간, 그 시간들을 하루하루 지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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