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냥 유세하고픈 나이 든 꼰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방학을 맞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부녀의 모습은 워낙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요새는 부쩍 아버지가 딸을 정말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대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제 곧 스물여섯이 될 나이이니 정말 당연한 일 일터. 그만큼 나도 부모님께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는, 제법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뿌듯하면서도 정말 왠지 모르게 조금은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 탓에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감에 대상도 없는 서운함이 올라왔다.
이제는 제법 물가에서도 혼자 잘 지내는 딸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 또한 뿌듯하시면서도 못지않게 서운한 감정이시다는 걸 물론 온전하진 못하겠지만 요즘에서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다 표현을 하시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우리의 시간 속에서 가득 차는 서로의 말투와 눈빛에서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서, 달력이 넘어갈수록 서로에 대한 뭉클함을 가지고 대화를 주고받아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떤 대화 중에 예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의견 차이로 인한 다툼이 떠올랐다. 나는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와 자식 간에 어쩔 수 없는 그러한 시간으로 인해 다툼이 있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그런 일들을 통해서 각자의 영역을 조절하고 또한 굳혀가며 부모자식같의 이해관계를 나누는 시간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자식은 결국 부모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분리된 존재이기 때문에 크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독립의 과정이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넘겨짚고 예상하는 부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말을 아버지께 털어놓았을 때 나는 나 나름대로의 아버지의 대답을 홀로 예상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아버지의 대답은 사실 정반대였다.
아버지도 그때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어린 자식을 나무라는 그러한 말투여서 잔소리로만 생각하고는 '노인네가 왜 또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를 하는 거야.'이렇게 생각하시고는 그렇게 크게 싸우셨더랬다. 자신이 이제는 마냥 어린 자식이 아니고 다 큰 성인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터치받고 싶지 않았고 독립되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사실 그러했던 본인이 너무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부분까지 말씀하셨을 때 나는 머릿속으로 그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에서 시작된 말씀일 거라고 또한 넘겨짚는 실수를 하였지만 아버지의 그다음 말씀은 달랐다.
'네 아버지,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어야 했다고 하셨다.
그냥 아버지는 본인의 행동 변화의 여부와 사실 상관이 없을지라도 할아버지 마음의 본심을 헤아렸었어야 했다고 참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부모 자식 간에 독립이나 이해관계의 주도권 따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사실 인격과, 지식, 교양과 같은 것이 무조건 동반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어. 다른 면들이 성숙할 수도 있고. 그저 한 사람이 살고 지내오면서 이런저런 경험과 과정을 겪었을 뿐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충분한 너그러움과 이해를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단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이 건네는 말의 속 깊은 진심을 몰라주어서는 안 돼. 지금 당장 참을 수 없이 당황스러운 말투라고 해도 아무리 너의 부모가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연약함을 크게 이해해주렴. 가끔 부모도 자신의 살아온 세월이 무능력해서 자식에게 의지하고 싶을 만큼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어쩌면 강한 아버지셨을지도 모르겠다. 내 유별난 기질을 다스리시려는 것도 있었겠지만 조금은 엄하기도 하셨던 아버지가 이제는 이런 말씀도 서슴없이 하실 정도로 우리 부녀가 서로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 왠지 부자연스러워야만 할 것 같고 조금은 슬픈 일이기도 했다.
아직 너무나도 새파란 나도 내 앞 날을 걱정한다. 아버지는 이제 점점 삶에 대해 큰 모양을 많이 만들어오기도, 마무리를 짓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기에 불완전 할 수 밖에 없을 연약함으로의 그 마음은 또 어떠한 것일까 참 여러가지 생각이 함께 떠올랐다.
넌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아버지는 이 말을 어디서 들어보셨단다. 나는 이 순간 이 말이 그냥 유세하고픈 나이 든 사람의 꼰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오랜 세월을 일단 남 보다 지나왔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삶에대한 의문. 그리고 '늙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표현하는 연약함을 보여주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 와중에 '젊음'이라는 큰 희망에 대한 부러움의 표현, 어쩌면 이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많은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응원과 격려를 주시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