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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Dec 04. 2016

내일은 그저 쓸쓸했으면 그걸로 좋겠어.

흔히 말하는 왕따. 힘 없이 작은 슬픔의 한 조각.

 늘 밤에 잠이 들기전에 말도 안되는 작은 바람 하나를 되뇌인다.


'내일은 그저 쓸쓸했으면 그걸로 좋겠어.'


 쿵쿵 아프게 뛰는 버거움이 비수가 되어 심장으로 무겁게 찍어댔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내일이 바로 지구의 마지막 날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매일 그렇게 잠이 든다.


 하지만 곧 밝음은 어김도 없이 다시 돌아오기에, 눈을 뜸과 동시에 천장을 노려보며 아침다운 청명한 한숨으로 하루를 시한다. 


출근 준비 중이신 엄마를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땡깡을 부려보고 싶었다.

“엄마.. 나 배가 조금 아픈것같아..” 

“배 아프면 꿀물 좀 타줄까?”역시 내 맘 아무것도 모르고..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괜찮은거니? 엄마 출근할게. 저녁은 김치찌개 데워서 김이랑 해서 동생이랑 먹고.”

“...응.”

출근하는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를 풀어보았자 괜히 미안하기만 할 것 같아서 오늘도 말 끝을 흐렸다. 휴.


 왁자지껄 떠들고 즐거워하는 소리의 근원지인 학교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고개가 떨구어지고 점점 걸음은 더 느려져만 간다. 오늘은 정말로 몸이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하는 마음으로 이마를 짚어보지만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강한 몸 상태. 오늘도 실컷 무시당하고 치임당하기 딱 좋은 상태다.


“...! ...!!”

“......!!!!!”

뭐지. 왜 이렇게 누가 소릴지르지? 당연히 나는 해당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려는데.

“아우, 너는 왜 맨날 무슨 생각하느라 대답도 없어!”

아, 너구나. 그나마 나에게 다정한 네가 오늘도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난 당연히 나일 줄 몰랐다.

“..어..어.. 안녕..”

으그 병신. 말은 왜 더듬어.

“그래. 담엔 먼저 인사도 좀 하고 그래! 맨날 나만 인사하냐. 우리 초딩 때 처럼 좀 지내자.응? 어쨌든 나 먼저 간다. 빠이!”

 아휴 아니, 넌 너무 활기차서 소리가 커서 주목이 되니까. 폭주기관차를 삶아먹은것도 아니고.

뭐 그냥 나 같은 애가 너랑 인사하면 너가 창피해하지는 않을까 그게 또 걱정이기도 해. 그런데 한편으론 정말 고마운 것 같기도.. 초딩 때 일도 기억해주고. 근데 아무도 없을 때 아는 척 해주면 안되겠니. 너 때문에 쪽팔려...


 결국 쓸데없는 생각만 한채 벌써 교실의 코 앞까지 가까이 와버렸다. 이제는 숨 소리마저 날 주목하게 만들까봐 숨을 멈추어본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가슴을 뚫고 온 교실을 울리면 아이들은 더 비웃으며 겁을 주려 몰아세우겠지. 오늘도 역시 버틸 자신이 없다. 그냥 그냥, 소리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줘.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면 무능하고 찌질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있다. 학교폭력을 예방한다고  '너는 장난, 나는 상처'라는 문구가 적 정말 대책없는 스마일거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울이다. 모두가 나의 이 상황을 우습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이런 발칙한 거울따위 중요하지 않다는걸 알았겠지.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스마일거울이라니. 난 거울을 보며 웃을 수 없다.


 


 즐거운 점심시간의 종이 울렸다. 모두가 식당으로 부리나케 달려나가고 나는 빈 교실에 덩그러니 남았다. 헛헛한 공기만 남았다. 누군가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콰앙! 고요한 교실에서 혼자 긴장을 풀고싶었는데, 오늘도 역시 찾아온 너희들, 오늘은 이 시간이구나.

 밥보다 내가 더 보고싶었던 너희에게 온 아픔으로, 하지만 입 밖으론 낼 수 없이 마음 속으로만 외쳤다.

내가 맞아야만 할까. 맞고있을까. 

왜 욕을 들어야 할까. 듣고있을까.

왜 이렇게 나는 병신같아서 쫄아만 있을까. 병신같을까.

 습관처럼 나온 아주 맹목적인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너희의 얼굴을 쳐다봤다. 순간 눈 앞이 시커매지면서 무언가 얼굴로 날아왔다. 


 



 눈을 떠보니 입원실이었고 힘 없는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엎드려 주무시고 계셨다. 이런 병신같은 꼴을 결국 보이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고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고독하고 쓸쓸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떠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만 있다면.


내가 깬걸 아셨는지 엄마도 내 눈을 맞춰보신다.

“아들... 그 동안 왜 엄마한테 그 동안 말 안해줬어?” 당연히 부끄러웠으니까.

엄마에게 보일 내 모습이 처량해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못나고 찌질할 내 모습.

그리고 왜 이제서야, 꼭 내가 이런식으로 큰 일을 당해야만 그제서야 묻는 질문이 괜히 서러웠다.  

“뭐가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홱 뱉곤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잡아서 머리 끝까지 푹 뒤집어 덮었다.

“그래. 그럼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좀 쉬어.” 엄마는 이 말씀을 마치고 병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셨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숨 막히는 이불을 홱 재껴내렸다. 이제서야 조금씩 정리되는 머릿 속에서 이젠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냉정하게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이는 창 밖의 풍경은 너무하게도 맑아서 빛나는 하늘이 눈에 시립게 느껴졌다.

드디어 그렇게도 동경하고 바래왔던 쓸쓸함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혼자일거지만, 그래서 시원했다.

 괜히 마지막이란 말을 억지로 꺼내어 생각 해보니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미끄린다. 이제 그렇게 그리던 그 쓸쓸함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창가에 서본다. 체중을 밖으로 싣고 기울이며.


벌컥.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야! 괜찮냐! 여기까지 왔는데 나 또 모른척 할거냐!”

역시 폭주기관차를 삶아먹은 목청. 내 쓸쓸함이 너 때문에 다 깨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왠지 조금 반가웠다. 덩달아 조금 용기를 내어 네 인사를 받아 말을 건네본다.

“야 김지현! 여기까지 따라왔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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