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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an 07. 2017

사망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 혀는 스스로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갑자기 혀가 나의 것이 아니게 느껴졌다. 이런 증상은 이제 보니 두 달 정도가 다 되어간다.

나라는 생명체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있었던 그냥 나의 혀일 뿐인데 여태껏 과는 다르게 점점 뻣뻣해짐을 느낀다. 피가 쏠려서 하루 종일 땅땅히 굳어가고 매일 그 상태로 있다 보니 온 몸에 진이 다 빠질 정도였다. 편도까지 다 힘이 빠지지를 않아서 자주 사레가 들렸고, 혼자 가만히 있다가도 숨이 막혔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 혀는 스스로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어디가 문제가 생겼다거나 그런 특별한 일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언제부터인가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증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일주일 정도 찾아왔던 증상이었다. 그냥저냥 살다 보면 사라지던 증상이기에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홀로 생각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에게 설명하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내 혀가 뻣뻣해져서, 경직되어가는 것을 느낀다고 해도 나의 발음은 평소와 딱히 다르지 않다. 그저 나만 혼자 기진맥진 온 신경이 입 안으로 쏠린 채 그냥 지냈던 것인데 그러다가 몇 밤 자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싹 풀려있었다. 그렇게 풀리고 나면 되지도 않는 '간장공장 공장장'이런 발음을 시원하게 굴려보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요들송'따위를 제작하여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증상은 더욱 묵직했고,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전문적인 검사를 받자니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나 혼자 판단되어 그냥 딱히 돈 쓰고 싶지 않았고, 이런 애매모호한 일로 병원에 가면 분명히 일시적인 증상이라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쉬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왠지 이번에는 좀 달랐기에 나의 선택은 동네 가까이에 있는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를 함께 운영하는 작은 병원으로 향했다. 그냥 일단 이 곳의 선생님도 의사니까. 이 분이 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어차피 큰 병원에 가더라도 별 시원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를 함께 운영하는 작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처음 눈에 띄었던 건 온갖 건강보조관리 프로그램 및 주사 홍보였다. 독감주사, 비타민 주사, 자궁경부암 주사, 주사 주사 주사. 갑자기 역시 날 상대해줄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윤희윤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어쨌든 약간의 대기 후 진료실에 들어가서 나의 증상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좀 환자분이 예민하신 거 아니에요?'


 역시 이런 소릴 들을 줄 알았다. 왠지 날 보는 눈빛이 조소답긴 눈빛으로 보인다. 내 순간적인 착각일까, 진짜일까. 나도 참 이런 쓸데없는 일들이 필요해서 병원엘 왔다니.

솔직히 수치심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증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설명하는 것처럼 1차 신경, 2차 신경, 3차 신경 따위 일단 나에게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증상이 애매한 건 저도 잘 알겠는데, 예민하다뇨. 증상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속되니까, 힘드니까 병원에 온 거겠죠. 병원을 예민하고 유별나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까?'


 솔직히 이렇게 긴 대답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말하다 보니 괜히 또 눈물이 날 것 같은 나 때문에 화가 났다. 이후에도 의사의 말은 솔직히 쓸데없는 잔소리와 같았다. '평소에 물 많이 드시고, 입과 혀도 간단한 운동을 해서 근육을 풀어주세요. 정 답답하시면 큰 병원 가보시고요. 증상이 명확하지 않으니 솔직히 신경과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겁니다.'


나에게 왠지 이 말은 사망선고와 비슷하게 들렸다.


진료실을 나와서 계산을 하니 5600원이 나왔다. 역시 증상이 애매해서 약 처방도 없었다.


역시 쓸데없는 짓이었어.


 그냥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괜히 마음만 더 불편해졌다. 솔직히 기대를 하고 갔던 건 아니었는데, 왜 그리 나 자신이 한심하고 수치스러움이 느껴졌는지.

난 그래서 계속해서 내 목을 조르는 혀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었다. 계속 현실 속에서 겉돌게 되는 기분이 든다. 빡빡하게 굳어가는 하관 때문에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잠도 쉬이 시도할 수 없는 나날이 지속될 것만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한 겨울 땅 속 가득히 냉기가 차 들어간 그 곳에서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못한 감자가 수분을 잃고, 뻣뻣히 굳어 결국은 썩어져버리는 그냥 그런 감자의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숨이 끊기기 전에, 내가 썩어버리기 전에. 나의 숨을 점점 조여오는 것들을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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