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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Jun 21. 2023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와서

북한강_춘천

에미가 낯짝 글렀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으렷다. 아바로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겠지만 즈 에미 년은 쥐었다 논 개떡 같아도 좀 똑똑하고 낄끗이 생겼느냐. 비록 먹고도 대구 또 달라고 불아귀처럼 덤비기는 할망정. 참 이놈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버지보담도 할아버지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년이 나에게 되지 않은 큰 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전에야 그 상판대길 가지고 어딜 끽소리나 제법했으랴.                             

                                                                             " 김유정의 안해 中 "


지난주 춘천 닭갈비 축제장에 갔다가 경춘선을 타고 김유정역에 내렸다.

기차역에서 나와 천천히 문학촌을 향해 걷다 보면 옛 김유정역이 나온다.

폐역이 되어 60~70년대 쓰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뒤쪽에는 철길과 꽃밭이 꾸며져 있었다.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철길사이를 걸어가며 사진 찍기 좋았다.


김유정 문학촌 입장료는 2,000원이었다.

입구에 동백꽃에 명장면 점순이가 주인공의 닭과 제 집의 닭을 싸움시키는 장면이 청동상으로 놓아져 있었다. 오른쪽의 김유정 이야기집으로 가면 작가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린 그림과 소설의 주요 문장들이 있다.


동백꽃, 봄봄으로 잘 알려진 김유정은 1907년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방탕한 형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태어나기는 춘천에서 태어났으나 학교는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다니고 휘문고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같은 코미디 배우를 좋아하는 영화광이었으며, 짝사랑했던 박녹주로 인해 판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김유정의 소설은 교과서에 실려서 잘 알려진 동백꽃이나 봄봄처럼 농촌소설도 있고 도시소설도 있다.

그래도 재미있는 건 농촌소설이다. 문장마다 그 모습이 사실처럼 그려지고 농촌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더 재미있었다. 안쪽으로 더 가면 봄봄의 장면이 청동상으로 있었다.

김유정 생가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놓았는데 들어가서 하룻밤 묵고 가고 싶은 마음이 일만큼

정돈이 잘 되어있었다.

길을 건너면 다시 김유정 문학촌의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이 있고 문학관이 이어지는데

가장 재미있는 건 실레마을에서 많은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실레마을 이야기 지도가 있었다.

'솥'이라는 작품의 한 장면도 청동상으로 세워져 있어서 궁금해서 집에 와서 김유정 단편선으로 읽게 되었다.

'들병이'라는 일제강점기 아낙들이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니며 술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모습이 여러 편에 걸쳐서 나와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꽃뱀쯤 되려나, 여자들이 생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아이와 가족을 위해 들병이로 나섰고 남편들도 오히려 얼굴이 반반한 여자와 결혼해 여자들이 술을 팔고 몸도 팔아서라도 가족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길 원하는 모습들이 '소낙비', '솥', '만무방', '안해', '두꺼비'등의 작품에 나와있었다.

나에게 이중에 가장 재미난 것은 '안해'였다.

얼굴도 그리 변변치는 못하지만 아이를 낳고 목소리가 커지고 남편에게 대드는 모습은 영락없이 요즘 새댁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들병이를 해보겠다고 남편에게 소리를 배우고 담배피며 폼 잡는 법도 연습하는 아내의 모습은 불쌍도 하고 그래도 그 마음바탕에는 가족을 위한다는 게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가정도 파탄 나게 생겼어서 남편이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써놓았을까 읽으면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녹주에게 스토킹을 했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리하고 재미있다. 이 정도 말솜씨면 여자를 트럭으로 몰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김유정의 소심한 마음이 답답도 하였고 그래서 동백꽃이나 봄봄의 주인공이 김유정에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덕분에 6월의 어느 날 나는 실레 마을에서 닭싸움을 구경하고, 콩밭에 금을 캐기 위해 땅을 뒤집던 흙손을 보았으며 술병을 들고 큰소리로 노래를 뽑아내는 돼지코 새댁의 꿈이 어떠한지 그려보기도 하였고 가난이란 또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또 씁쓸하고 쌉쌀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조금씩 바꾸는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주인공을 불러 다시 그 시간이 된다면 또 그럴까.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까.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옛 김유정 역
봄봄의 한장면
솥의 한장면
실레마을 이야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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