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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Oct 15. 2023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왔어요

제 41회 마로니에 백일장에 운문으로 참가해 보았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하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이다. 작년에도 날씨가 좋아 파란 하늘이 바다처럼 펼쳐졌었는데 올해도 그랬다. 아침에 조금 쌀쌀한 듯하더니 참가하여 열심히 글을 적는 동안 몸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양평에 사는 화가이자 시인인 이진아작가님과 같이 함께 했다. 오전 9시 30분쯤 도착하였고 바람도 없이 약간 찬 공기가 글쓰기 딱 좋은 날이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샌드위치와 음료수가 제공되었고 마로니에 공원 바로 옆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밀크티와 치즈케익을 먹으며 "우리는 오느라 힘들었다" "서울은 물이 틀리다" "그래도 우리는 공기 좋은데 산다"로 끝나는 안부를 얘기하고 최근 같이 글 쓰는 문우들의 엄청난 열정에 놀라자빠질 지경이라는 얘기를 했다. 나는 좀 열정적으로 글쓰기에 임했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오랜만에 일을 좀 했었다. 어찌나 기억이 잘 안나던지 까마득하게 동해바다를 끝에서 끝까지 헤엄쳐 다니는 느낌이었고 조금 기운이 빠졌다.

그동안 문우들은 다양한 곳에 탐방도 다니고 전자책 출간 수업도 들으며 열정적으로 임하는 것을 보고 체력도 열정도 부러웠었는데 같이 동행한 작가님도 그랬던 것 같다.^^

우리도 열심히 해보자 다짐을 하며 시제를 기다렸다. 시제는 삼겹살, 어머니, 새벽, 서랍이었다.


무엇을 쓸까 하다가 삼겹살로 정했다. 행사장에서는 다르게 썼는데 박준시인버전으로 바꿔보았다.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는데 그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삼겹살

                                                      밀크티 라떼

서민냄새 폴폴 나는 곳을 이상하게 좋아하는 그는 고기는 삼겹살만 먹는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도 서민냄새를 좋아하는 그는 작고 좁은 그렇다고 맛이 썩 좋지는 않지만 밤 12시가 넘으면 계란찜 정도는 서비스로 줄줄 아는 퉁퉁한 이모님이 아주 늦게까지 아무 말 없이 장사를 하는 술집을 좋아했는데 그렇게 서민코드가 맞는 김대리님과 죽이 척척 맞아 어깨를 비비며 앉아서 어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다시 새벽 2시쯤 철야하고 졸다가 지하철 차고지에서 잠 깨고 다시 출근한 얘기를 끝으로 일어서려 할 때 갑자기 앞자리에서 형제간에 번데기에 조촐한 술자리를 하던 머리 희끗한 동생이 왜 쳐다보냐며 맥주병으로 얼굴을 때리는 그런 험악한 일도 당했다. 그래도 여전히 김대리님이 결혼 전까지는 그 비슷한 조촐한 술집에서 술을 마셔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곳은 외로운 김대리님과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그의 심심함이 선반의 라면냄비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김대리님이 알뜰하고 현명한 마눌님과 결혼하여 월급을 자진납세하고 매주 사랑과 용돈을 받기 전까지의 일이다.


삼겹살에 관한 시를 적었는데 갑자기 수필 합평반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또 쓰고 또 쓰면 계속해서 다른 글이 우러나온다' 그 말에 다섯 번은 고쳤다.

1시 30분쯤 글을 제출하고 밖을 좀 걸어볼 생각이었는데 다른 작가님이 연락이 왔다. 우린 셋이서 샌드위치를 먹었고 갑자기 또 수필반 선생님 두 분이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무슨 벙개모임처럼 재미있었는데

모두 박준 시인의 강연을 들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냥 집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이진아작가님이 유키즈에서 본내용을 설명해 주었다.결국 강연 전 10여분 거리의 서점으로 가 시집을 샀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이었고 한 권밖에 남지 않아서 이진아작가님만 샀다. 우연히 듣게된 강연이였는데 참 재미있었다. 말을 상냥하게 하시는 분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박준

일산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에 탄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가 운전석으로 가서는 서울로 나가는 막차가 언제 있습니까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차는 언제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집에 와서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시집도 읽었다. 기분이 좋았고 바닐라라테를 한잔 테이크아웃해서 가을 낙엽 떨어지는 벤치에서 읽겠다고 앉아있다가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이제야 글을 쓴다. 이진아 작가님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사실 유레카를 외쳤다.


우물우물거리지만 아주 재미있는 말들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어설프지만 결론 없이 망설여지는 말들이 시고 어쩌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정말 순수한 마음이라는 걸 알게 해 줘서 기뻤다. 연습장 한 귀퉁이에 혹은 이면지에 아무렇게나 적어져 연결도 결론도 없이 다음 말들이 이어지길 기다리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생활과 연결되었던 이야기들은 시가 될 수 있다는데 기뻤다.  열정과 결론으로 똑 떨어지는 글이 아니어도 오늘은 이러이러해서 나 좀 외롭습니다라는 글이 하나의 작품이라는데 감사했다. 두 권의 시집을 읽는 동안 감기몸살에 걸리기도 했지만 아주 오래된 골목길을 걸어 다니고 깊은 숲길을 산책하고 온 것처럼 먼 곳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큰 고독을 짧은 말로 거르기까지 토닥였을 이 시어들 덕에 난 아주 많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능곡빌라             

                                             박준

몇 해 전 엄마를 잃은 일층 문방구집 사내아이들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잠을 잔다 벌써 굵어진 종아리를 서로 포개놓고 깊은 잠을 잔다 한낮이면 뜨거운 빛이 내리다가도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들면 덜컥 겁부터 먼저 나는, 떠나는 일보다 머무는 일이 어렵던 가을이었다.

백일장 부스에서 낙엽과 함께





 이진아 작가

                                         밀크티 라떼

어떤 말은 머그컵에 그려진 팬더 같고

어떤 말은 이불 위에 프린트된 꽃 같다


나에겐 시를 말하고

아이들 마음엔 그림을 그린다


얼마전 나에게 그림을 그려줬으니

아이들에게 시를 들려줄 것이다

이진아 작가와 박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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