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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밖으로 얼굴을 내민 능소화

외암천_아산 외암마을

by 김은진

능소화의 꽃말은 기다림이라는데 나는 왠지 반가움인 것 같다.

주황색 능소화의 아름다움이 반갑고 소박하고 씩씩한 태도가 반갑다.

능소화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반가워 활짝 웃는다.


사실은 마이산의 능소화가 너무나 보고 싶었던 하루였다. 엄마는 능소화처럼 예쁘고 씩씩하고 어디서나 잘 어울리셨다.

나이 드시면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자식에게 피해 주지 말아야지.' 농장의 허가를 위한 서류 작업을 대신하거나 미국에 계시는 선교사님께 편지를 쓸 때 아빠가 나에게 시키셨는데 엄마는 싫어하셨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은 자식한테 시키지 말라고......

나는 아빠가 나에게 이런저런 상의를 하는 게 늘 좋았는데 엄마는 자식이 고단한 게 늘 싫으셨던 가보다.

점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 때에도 자식에게 부탁하기보다는 외삼촌들과 이웃들에게 부탁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더 자주 가서 보살폈어야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 크다.


사람들이 항상 엄마에게 하는 말은 "엄마가 딸 셋보다 더 예쁘다."였다. 딸 셋이 다 커서 처녀가 되어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했고 화장을 하고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어도 엄마의 미모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예쁜 엄마여서 난 기분이 좋았지만 정작 본인은 딸들이 기죽을까 봐 그런 말도 듣기 싫으셨는지 옷도 사 입지 않으시고 화장도 잘하지 않으셨다.

딸들에게도 예쁘다는 말은 별로 안 하시고 늘 직업을 갖길 원하시거나 저축을 열심히 하길 바라셨다.

"얼굴 예쁜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자식들 공부 가르치려면 남편 모르는 돈도 있어야지." 말씀하시며 늘 이런저런 궁리 중이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으셨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이 약하셔서 이런저런 대비를 하셨던 것 같다.


마이산까지 대중교통 이용하면 왕복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저녁에는 돌아와야 해서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일정을 미루고 대신 아산 외암마을로 향했다.

기차를 탈까 하다가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새벽에 일어나서 이런저런 일을 했더니 좀 푹 자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정말 꿀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평택을 지나고 있었고 푸르른 논이 보였다.

가끔 이렇게 지하철에서 낮잠을 자도 되겠다 싶었다.


'온양온천역'에 내려서 광장을 지나 20분 정도 걸어가서 '송악나드리'정류장에 닿았다.

여기서는 100번과 101번이 번갈아 와서 외암마을로 손님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할머니, 여기 100번과 101번 얼마 만에 와요? 외암마을 가려고 하는데요."

"어? 외암마을~ 30분마다 와 요즘 버스는 빈차로 다녀. 다들 차 가지고 다니니까. 젊은 사람들이......"

30분 정도면 금방이지 하며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고가차도 밑에 시원하게 여름을 나는 비둘기들을 바라보았다. 땅에서 걸어 다니며 바닥을 쪼다가 교각밑의 틈으로 들어가 먼 곳을 바라보는 비둘기는 마치 아파트 생활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송악나드리 교각맨션' 1003호 비둘기가 1005호 비둘기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다. 나머지 입주민들은 광장에서 할아버지가 던져준 강냉이를 쪼아대고 있었다.

버스가 여러 대 오더니 같이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모두 탑승을 하셨다. 혼자 남아 비둘기입주민들의 점심식사를 구경하고 있으니 갑자기 비둘기들은 '도시가 좋은 걸까. 사람이 좋은 걸까' 궁금해졌다. 잠시 후 100번 버스가 왔다.

요즘 버스에 손님이 없어 빈차로 다닌다는 할머니의 말과는 달리 그날은 버스엔 손님이 꽤 있었다. 창밖으로 아파트가 지나가고 몇몇 큰 건물을 지나치자 외암떡방앗간과 농협이 나오고 시골길이 펼쳐졌다. 25분 정도 지나자 마지막 정류장인 송악환승센터가 나왔다. 이곳이 외암마을 입구였다.

햇볕이 따가운 6월의 여름 한낮에 입구에서부터 능소화가 나를 반겼다. 500여 년 전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이곳은 마을초입에 연꽃이 막 피기 시작하였다. 푸르고 커다란 연잎 위 우아하게 올라오기 시작한 연꽃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갑자기 한복에 댕기머리를 하고 싶어지는 고즈넉한 외암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연꽃연못에서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곳에 능소화가 활짝 피어있었다. 돌담에 전체에 주황색 꽃등이 주렁주렁이다. 반갑게 얼굴을 내민 능소화를 보고 "아! 이곳의 능소화가 딱 엄마의 모습이네."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돌담을 열심히 가꾸고 있는 어여쁜 능소화가 아이를 키우는 마음씨 따뜻한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았다.

능소화는 중얼거린다. "예쁜 얼굴이 다 무슨 소용이야. 돌담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감싸야지.(방긋)"


능소화의 꽃말은 기다림이라는데 나는 왠지 반가움인 것 같다. 주황색 능소화의 아름다움이 반갑고 소박하고 씩씩한 태도가 반갑다. 능소화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반가워 활짝 웃는다.

외암마을의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능소화가 많았다. 소박한 마을이 주황색 꽃등으로 화려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송하듯 펼쳐진 능소화길에서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과 엄마가 된 나의 모습이 겹친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 제보기사의 후기 입니다.

[사진] 음마, 담벼락이 호강을 하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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