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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Sep 07. 2023

제 7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1)

APAP7, 상상공간에서 펼쳐지는 강력한 메세지 전달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안양에서 3년마다 열리는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축제이다. 시민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로 올해 7회째에 이른다. 


APAP7의 주제는 '7구역, 당신의 상상공간'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옛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실내작품으로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아트, 커뮤니티 아트 등 다수의 작품이 선보였고 야외에도 두 작품이 설치되었다.

안양예술공원에 이전 APAP작품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안양시민으로서 이번엔 어떤 주제로 열리는 것일까 궁금하였다. 더군다나 농수산물검역본부은 6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이어서 복고 감성을 느끼기 좋고 실내이니 관람하기 편리한 점이 있었다.


입구에 설치된 은행나무의 보자기라운지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키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보자기에 둘러싸인 타이어만 한 튜브를 동그랗게 매달고 있다. 튜브마다 전등이 들어와 있고 나무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놓여있어 놀이동산에 사람이 탑승하면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연상시켰다. 바닥에도 한 번 더 튜브가 은행나무를 향해 비스듬히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앉아서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편안한 소파처럼 생겼다. 스페인 출신 건축가 이자스쿤 친치야의 <보자기 라운지>이다. '상상7 구역'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심가득한 재미있는 조형물을 많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 예상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장 첫 작품은 현실의 절단

실내 전시장의 시작은 예상과 달리 150권의 책이 진열된 방이었다. 이 작품은 함돈균 작가의 <북 만달라>로 처음 읽게 되는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독서의 시간은 독자의 현실을 시간적으로 절단한다. 평소 당신이 지닌 익숙한 생각을 판단중지 시키는 중립적 사물들과 당신을 마주 세운다."

책이 놓인 서가 바닥과 천장 곳곳에는 오래된 상형 문자들이 부적처럼 쓰여 있고 <시의 탑>이라고 시집이 꽂혀 있는 탑을 보고 있으니 마법책들이 꽂혀 있는 듯하다. 그중의 어느 문장을 읽으면 해리포터의 영화에서 처럼 마법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간병과 고령화, 돌봄 문제의 내부를 살피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니 간병인의 모습을 담은 미디어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알레시아 네오는 <땅과 하늘 사이>라는 작품으로 간병인들은 다른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직업의식에 충실하다 보니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는 소홀하여 작가가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송유경과 이이난 작가는 장애인복지관의 원생들에게 '자신을 돌보는 대상'을 점토를 이용해서 토템으로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하게 하였다. 완성된 토템은 우주의 행성이나 벌과 꽃, 과일 등 다양했고 작품과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돌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상상공간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며 계속 관람을 하였다. 

안혜경 작가는 <그녀의 소녀>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어머니와 지인들, 여행 중 만났던 노인분들의 영상과 그들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적힌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대게 80세 이상인 분들의 추억담과 소박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제7 구역은 상상공간이라고 했는데 돌봄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불쑥 잘못 끼어든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적인 문제가 이렇게 작품을 통해서 부드럽게 전달되니 힘든 일이라는 느낌보다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을 함께 지켜봐 주고 소중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의미 있고 선한 일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상상 속에서 열쇠를 찾아보자

이제 리촨의 방으로 안내된다. <시공간 균열>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시장 벽면에 무수하게 많은 철제 열쇠가 매달려 있고 그 밑의 벽면에 드로잉으로 자물쇠나 열쇠 구멍이 그려져 있다. 지금은 편리한 디지털도어록을 쓰는 시대지만 예전에는 열쇠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릴적 학교에 간 사이 부모님이 외출하실 때에는 항아리 밑에 열쇠를 넣어두어 그곳은 우리 가족만 아는 비밀 장소였는데 꺼낼 때에도 누가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항상 둘러본 후 얼른 꺼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관문을 열 때도 맞는 열쇠를 찾느라 이것저것 꽂아보던 생각이나 슬쩍 미소가 번졌다. 자연스럽게 나는 '과거의 시간 속의 나'를 보게 된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밝고 웃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회성의 현실의 반영

이층으로 올라가 만난 이병찬작가의 <크리처>는 풍선 같은 번쩍이는 비닐과 플라스틱 연통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 호흡하는 것처럼 바람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거대한 도시 괴물을 보는 듯했고 모두 일회용품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주목이 되었다. 도시의 삶이란 어쩌면 일회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게 시작되지만 아주 쉽게 잊히기도 하는 도시의 생태계 같기도 했다. 거대한 도시 괴물 바로 밑에는 동그란 볼록 거울이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나의 모습을 비춰보니 위에 있는 조명과 번쩍이는 비닐 덕분에 파티를 장식하는 풍선처럼 보였고 나는 제법 근사한 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묘하게 날카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정답은 아니야

이번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라는 긱블의 작품을 보았다. 괴짜과학자 실험실에는 한쪽 눈만 뜨고 혀를 내밀고 있는 아주 커다란 얼굴이 있다. 스티븐잡스를 닮은 것도 같은 AI는 온통 오답만 말한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알려줘."라고 말하니 미세먼지 줄이는 법을 알려준다. 엉뚱한 AI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안심이 되는 이유는 외모로 봐서는 내 미래까지 모든 사람 앞에서 거침없이 말할 것처럼 영험하고 냉정해 보여서 긴장했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열쇠는 무엇일까. 

다음 전시를 보기 위해 복도를 지나며 어쩌면 우리가 걱정하며 매달리고 몰입하고 있는 현실은 일회성이고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껏 밀려나지 않기 위해 힘주어 버티고 있던 마음의 긴장이 멈추고 현실이 해체되는 듯했다. 

이성근 작가의 <인간+사랑+빛>을 감상하며 사랑하는 마음과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은은한 빛을 받고 있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알의 형상은 내가 품어 볼 수 있는 희망으로 보이고 고치모양을 한 밝은 색상의 철망이 그려내는 기다란 그림자는 무수히 지나가는 감정들처럼 보였다. 이곳은 마치 해변가 모래사장을 연상시켰고 갈매기과 거북이들의 알이 조약돌 뒤에 놓여 있는 듯했다. 


조정호작가의 <동행>은 홀로그램으로 우주의 빛이 지구가 되고 달이 되고 둘이 서로를 만나고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상현실을 실감 나고 신비롭게 표현해 정말로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지구와 달처럼 상호 공존는 존재이고 한쪽의 가치에 치우치지 않게 살아야 함을 영상을 통해 전하는 듯하였다. 

이밖에도 많은 작품들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전시되어있어 마음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전시장을 나서며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다시 보자기 라운지에 섰다. 보자기는 예전에 선물을 포장할 때 썼고 가방으로도 썼는데 왜 보자기를 이곳에 감싸놓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상상의 열쇠를 보자기에 잘 담아 집으로 향했다. 시간과 공간을 가르며 상상과 현실이 섞여 마법 같은 비책이 쏟아지는 '안양APAP7, 제7 구역'으로 가보시길.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제보했습니다.

3년마다 열리는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축제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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