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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Sep 24. 2023

수국농사 대소동

2023년 6월 이야기

여름이 절정을 향해 질주하는 6월의 마지막주, 가족과 함께 공주시 유구읍으로 향하는 길은 더위도 막지 못할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축제장엔 화사한 흰색의 스트롱아나벨과 상큼한 분홍빛의 핑크아나벨이 만개하고 시원한 파란색 앤드리스썸머는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여 작은 꽃송이가 몇 개 보였다. 정원 전체가 웨딩홀이 된 것처럼 우아하고 신성한 느낌이었다. 꽃이 커다랗고 무거워 쓰러질까 봐 철제 막대를 세워 고정하고 있었다. 역시 농사를 짓던 분들이라 오이와 고추밭이 연상되는 이런 느낌이 친근하고 재미있었다.      

이 정원은 2018년부터 주민들이 쇠락해 가는 지역을 살리고자 수국을 심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유구천변, 약 1km 넘는 구간을 제방과 고수부지 산책로는 물론 비탈면까지 촘촘히 심어 놓았다.      

길을 따라 걸으며 여러 가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니 출출했다. 유구 시장 입구에 있던 곱창집으로 갔다. 식당 안에는 5개의 둥근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고 삼발이 의자가 테이블마다 5개씩 놓여 있었다. 하나 남은 빈 테이블에 앉았다.      

작달 하고 단단한 체구를 가진 주인아저씨는 검게 그을린 얼굴과 붉은 면티가 잘 어울렸고 싱글벙글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곱창전골 3인분이요.”

출입문과 주방이 마주 보는 구조고 그사이에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주인아저씨의 지인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시는 분마다 일단 아저씨와 악수를 나누고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 불판에 곱창을 구우며 소주를 한잔씩 하셨다.     

손님들 쪽은 한 테이블 빼고는 음식이 안 나와 멀뚱멀뚱 있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다른 테이블에 메밀국수가 전달되었고 다시 10분이 더 지났다.

왜 이리 늦는 거지 하며 주방을 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천천히 야채를 다듬으시며 웃고 계신다.

“아저씨, 저희 곱창전골 언제 나와요?”

“네? 곱창전골 시키셨어요? 에고 (주방을 돌아보며) 여기 곱창전골 있는데. 내가 깜박했네”

이게 무슨 상황이람. 잠시 나도 멍해졌다.

시간이 없어 가보겠다고 하고 시장에 있는 분식집에서 시원한 열무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저녁에는 캠핑장에서 장작불을 태우며 불멍을 했다. 그리고 붉은 티의 곱창집 아저씨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오늘부터 축제라 대목인데 한숨 돌리고 계신 듯 느긋한 표정은 뭘까 혹시 이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유구천변 수국을 마을 분들이 구역을 나누어 가꾸기 시작했는데 곱창집 아저씨는 파란색 수국  쪽 담당이셨다. 그것도 마을 회의 때 본인이 하겠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리스타인 큰 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 커피찌꺼기는 산성이라 수국이 파랗게 된데요, 회충도 없애준다니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여기 사람 많아지면 아버지 가게 옆에 나도 커피숍 하나 차리고 싶다.”

“시집은 안 가구 여기서 커피숍 차리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듣기 좋은 소리다. 동네 똑순이였던 큰 딸이 여기 와서 살기만 하면 나도 그렇지만 애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겠냔 말이다.     

그리고 모판에 모를 낼쯤 딸이 다녀가면서 커피 찌꺼기를 다량으로 가져다주었다.

“아버지, 이거 냉장고에 잘 넣어 두었던 거니 수국에 주세요, 벌써 나도 예쁜 꽃이 기대되네.”

아저씨는 그날로 그 찌꺼기를 밭에 가져다 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담당 구역뿐만 아니라 파란색 전체에 골고루 뿌려 주었다. 크고 시원한 파랑 색의 수국꽃을 만들기 위해 돼지농장에서 돼지분뇨와 닭농장의 퇴비도 가져다가 부었다.

수국 줄기가 쭉쭉 뻗어 올라오는 것이 처녀 시절 아저씨의 아내처럼 시원시원해 보였다. 아저씨는 키가 작달막하고 통통하지만 아내는 키도 후리후리하고 팔다리도 길쭉길쭉하지 않은가. 그 체격을 딸이 꼭 빼다 박았단 말이지.     

갑자기 더워진 4월 말 어느 날, 수국정원에 자신이 담당하던 구역에 붉은 꽃이 한 송이가 피었다.

‘이를 어쩌지, 분명히 수국꽃이 파란색으로 피어야 하는데.’

당장 이장댁에 전화를 했다 “큰일 났슈. 지금 파란 게 올라와야 하는데 뻘건 게 올라 왔슈!”

“뭐! 자네는 파랑이 담당이자녀…후딱 유구교로 갈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도통 모르겠다.

일단 이장 형님을 만나볼 양으로 밖으로 나왔다.

“자네 여기다 뭐 줬어? 4H회장이 비료 준 거 꺼 얹었어?”

“네, 희영이가 준 커피찌꺼기 가져다가 부었고 박사장 돼지목장에서 퇴비 가져다 붓고 백교리 닭농장에서 닭똥도 가져다 부었는데, 왜 이놈의 꽃이 더위 먹었나…”

“박사장? 거기 녹차먹인 돼지 아녀? 그거 가져다가 여기 다 부었다고? 참네, 이 사람 녹차는 알칼리고 백교리 닭농장이면 임씨네 아녀? 고급 한식당에 납품한다고 노상 굴껍데기랑 조개껍데기 가져와서 닭한테 갈아먹여.”

“아, 그럼 분뇨에 칼슘이 많이 들어갔나 보네요. 아이고 그걸 몰랐네…”

“이 사람아 좀 물어보고 해야지. 당장 희영이한테 전화해서 커피 원두 좀 부치라고 해. 찌꺼기보다 원두를 간 것이 효과가 바로 나온다는구먼.“

"형님들" 멀리서 4H회장 광식이가 비료 포대를 가지고 온다.

"빨간 수국이 나왔다고? 이거 유황하고 비료 하고 섞어 왔어. 너무 강해도 꽃이 죽어. 근디 이거 이렇게 되면 꽃이 좀 안 자라 땅 성질을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해서"

"너무 씨게 치면 죽으니까 살살 치라고."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아저씨의 담당 파란 구역은 그나마 죽지 않고 조금씩 꽃이 피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니 파란 꽃이 다섯 송이었다.

아저씨는 자신이 맡은 구역에 수국이 죽거나 다른 색으로 필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신통하게도 파란 꽃이 자그마하게 올라온다.

”나 다음부터는 빨간색 담당할래”

”그냥 자네가 혀... 파란색은 자네가 젤 잘 알 것 아녀, 이제. “

허허허, 올해 수국 농사 성공이다. 아저씨는 축제일에 맞춰 올라온 파란 꽃이 천사 같았다.

소주를 한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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