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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Oct 20. 2023

Waka Waka(가자 가자)

상체가 하는 일 따로 하체가 하는 일 따로다. 연필을 쥐고 책상에 엎드려 수학문제를 풀지만 하체는 선체로 바닥에서 무릎을 한쪽씩 교대로 접었다 폈다 하면서 "와카와카 에에에"라고 반복한다.

"5번에 2번" 답을 맞혀보라는 소리다.

빨래를 개던 나는 귀찮지만 그래도 숙제를 하는 게 어디냐며 재빨리 답지를 확인한다.

맞았다고 하면 "싸미나미나 장갈레와"라고 하고 틀렸다고 하면 "아~왜! 싸미나미나 장갈레와"라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며칠이 되도록 저러고 있으니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노랜지 물어보니 유튜브에서 와카와카(Waka Waka)를 쳐보란다.

검색해 보니 첫 장면이 축구장에 골이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곧이어 금발의 미녀가수와 아프리카 여성들이 역동적인 전통춤을 추며 응원곡을 부른다. 이곡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FIFA월드컵 공식주제곡이었다. 샤키라(Shakira)라는 콜롬비아 가수가 초반에는 영어로 후렴구에서는 카메룬어를 혼합해서 부르는다. 와카와카는 영어로 Walk Walk라는 뜻이고 싸미나미나는 장갈레와(Tsamina mina Zangalewa)는 행진하자 장갈레와 라는 뜻이었다. 둘째 아이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이렇게 번지고 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주변의 친구들이 거의 축구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하는 게 아니고 사설스포츠 클럽에서 아파트단지로 노란 봉고차가 와서 안양종합운동장이나 대림대학교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축구수업을 하였다. 엄마가 경기장에 같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드물게 직장을 다녀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였다. 나는 둘째가 어리고 같이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 혼자 보내기엔 매번 신세 지는 것 같아 부담되었고 점점 승부에 민감해지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행인지 큰 아이도 축구를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는 지금 우리 집에 축구열기를 불어넣고 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코로나로 계속 집에만 있었으니 방과 후 수업으로 운동을 하나 하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썩 내키지 않아 했지만 방과후 축구는 학교 친구들과 놀 수도 있고 재미없으면 중간에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했기 때문에 아이도 그러겠다고 했다.

시큰둥하게 시작한 첫 수업이었지만 아주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그란 스마일 인형으로 백 드래그를 연습하기 시작하더니 틈나는 대로 유튜브에 축구경기와 축구 잘하는 법을 구독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초등학교와 하는 친선경기에 선수로 뽑혔다고 좋아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나도 기뻐서 카메라까지 챙겨서 시진을 찍어주겠다며 따라갔었다.

1학기 동안 6번있던 축구경기를 빠짐없이 따라갔었다. 그리고 골대 근처에서 서 있다가 다른 팀이 골을 몰고 오면 한 번씩 몸을 날리는 장면을 찍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신기해서 와! 멋지다고 했었는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의문이 들었다. 왜 다른 애들은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는데 우리 아이는 수비만 할까.

그래서 물어보면 수비를 자기가 제일 잘한다는 것이다.


내가 축구를 잘 모르긴 하지만 무언가 많이 이상한 건 사람이란 모름지기 아무리 자신이 수비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공이 오면 넣어 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데 아이는 왜 그런 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걸까. 한 번씩 둘째 아이 앞에 오는 공은 드리블해서 골을 넣어 보았으면 좋겠는데 다른 아이들이 골인을 하면 박수만 치고 마는 것이다. 경기장에 오는 다른 아이들 엄마는 자기 아이가 골을 넣을 때마다 와! 하고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데 계속 필드만 바라보고 있기가 지루해졌다. 슬슬 카메라로 이 사진 저 사진 찍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 같았다. 슈팅을 계속해서 날리는 아무개 엄마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무슨 흥이 나서 사진을 찍겠냔 말이다.


"엄마는 이제 축구장에 안 올래, 피곤해서 너 데려다 주고 집에 갔다가 끝날 때 올게." 말하니 금세 눈두덩이가 빨개져서는

"이제 난 가족여행 안 따라갈 거야 엄마 혼자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이쿠, 한방 먹었다.  

"그건 안 되지! 알았어 그냥 축구장 갈게"

재빨리 상황을 수습했다.


이제 난 벤치에 앉아서 필드에서 수비를 하는 아이를 보면 다른 야망을 불태운다.

십 년 뒤 월드컵이 열리면 응원을 가는 거야. 바늘 가는 데 실가는 것처럼 나도 같이 가야지.

15박 16일로 가서 전 세계선수의 사진을 찍는 거야. 그리고 다른 곳도.

야무진 꿈을 꾸며 이제 나도 열혈 축구팬이 되었다.

Waka Waka!(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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