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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Aug 06. 2024

버스정류장에 내 시-詩가

매년 3월 안양문화예술재단, ‘버스정류장 문학글판’ 창작시 공모전에 도전


일상이 시가 되어...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다


며칠 전 아이와 안양천을 산책하다가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 시가 적힌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올봄 ‘버스정류장 문학글판’ 창작시 공모전에 응모했었던 <자전거 응원가>라는 시였다. 이 시가 어떻게 여기에... 기쁨과 감격에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도 나보다 더 기뻐해 주었다.
 
 이 공모전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공모전이니 이런 기쁨을 많은 분들이 누렸으면 한다. 조금 쑥스럽지만 시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알려드리고 도전을 부추겨 보려 한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풍경들

 이른 아침, 반쯤 감긴 눈으로 안양천으로 나오면 많은 사람이 오가는 것을 보고 화들짝 잠에서 깬다. 운동하는 사람,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과 학기 중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쉴 새 없이 오간다.

 
 복장도 대중없다. 나처럼 집에서 입던 옷에 모자만 쓰고 나온 사람, 운동복을 입고 가볍게 뛰는 사람, 슬리퍼를 신고 편하게 걷는 사람, 단정히 차려입고 지나가는 사람까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곳에서 만난다.
 
 산책로 옆 비탈과 고수부지에는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노란 개나리가 주렁주렁 피어나 환하게 불을 밝힌다. 뒤이어 조팝나무꽃, 달맞이꽃, 유채꽃, 노란 꽃창포, 개망초, 양귀비, 수레국화, 튤립 등이 피어난다.
 8월 초가 되자, 백일홍과 나비 바늘꽃이 한창이다. 걸으면서 나비가 날아오는 것, 벌들이 꽃을 보며 웅성거리는 모습, 작은 새의 무리가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주로 안양천과 학의천의 분기점에서 시작해서 그날의 기분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걷는다. 상류로 가면 호계동, 하류로 가면 석수동, 학의천 쪽으로 가면 인덕원이다. 조성된 붉은 트랙엔 보행자를 위한 인도가 있고 자전거가 양방향으로 지나게 돼있다.
 
 나도 자전거가 있다. 전문가용은 아니고 앞에 바구니가 달려 있는 일반 자전거다.
 정기적으로 장을 보고 새벽 배송도 시키지만 식사 준비를 하다 보면 꼭 한 가지씩 재료가 부족할 때가 있다. 요리를 하다 보면 갑자기 호박이나 양파가 없기도 하고 얼큰한 김치찌개에 고기를 한 근만 넣으면 딱일 때,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는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가까운 곳에 일을 볼 때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갑자기 자동화코너에서 현금을 인출해야 될 때와 인근 병원에 갈 때도 걷는 것보다 훨씬 빠르니 유용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하천을 걸으며 천천히 감상을 하고 싶었다.
 흐르는 물길 따라 잔잔히 빛나는 윤슬, 흰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백로, 물속에서 고적하게 서있는 왜가리와 엉덩이를 펑퍼짐하게 넓히고 물장구치는 오리를 살피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만 걷는 것이 아니라 저녁 무렵에도 틈날 때마다 하천변을 걸어 다녔다.
 
 자전거의 바퀴가 모든 삶의 발자취에 동그라미를 치는 듯
 
 걷다 보니 무심히 지나치던 모습도 친근하고 푸근한 그림으로 다가왔다. 어느 더운 여름날 안양대교 아래에서 마주한 모습도 그랬다. 이곳엔 장기를 두는 어르신이 많이 모인다. 무료 와이파이존이라는 표시를 뒤로 하고 오래된 의자와 평상이 놓여있다. 이곳엔 석수동 노장들은 짙은 눈썹을 모으고 병사들을 지휘한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격전을 벌이고 장기판 위에 말들이 기세 좋게 적진으로 침투한다. 결과는 시원한 콩국수로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노을이 질 때면 오래된 아파트의 흰 벽면에 주황색 빛무리가 엷게 번진다. 베란다에 놓인 항아리와 소쿠리, 글자가 흐려진 해진 전기밥솥 박스가 창문을 가리고 있는 모습들이 소박한 살림살이를 꾸리는 주인장의 모습을 그려보게 했다.
 건물의 유리창과 물가에 비친 오렌지빛 반영은 무지개처럼 행운의 신호로 보였고 은은한 저녁빛이 퍼질 때 꽃과 풀잎도 바람이 없이 살랑이는 듯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걸으며 천변을 감상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흐드러지게 핀 보라색 유채꽃 옆을 스치는 행인의 모습이 물 위에 데칼코마니처럼 비치고 있었다. 어지러운 소음을 걷어낸 고요한 시간이 넌지시 드리워져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자전거 바퀴가 다시 햇빛에 반짝이고 “위이~잉” 바퀴 소리가 났다. 몇 대가 연달아 지나갔기 때문에 한참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그 순간 자전거 바퀴가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공전이나 달의 자전처럼 그리고 별들의 운동같이 말이다. 페달을 밟으며 바람을 맞는 순간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도 트랙 위의 모든 발자취에 동그라미가 쳐지는 듯했다. 그리고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성실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날 트랙 위에 있는 사람의 상황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는 일이 술술 풀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오늘 아침에 가족과 말다툼을 했을지도 모르고 취직을 바라지만 아직 연락이 없어 풀이 죽었을 수도 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볼까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몸이 아픈 사람들도 바람을 쐴 겸 나왔을 수도 있다. 부모님께 꾸중을 듣거나 미래가 걱정인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무수한 모습들에 모두 동그라미가 쳐지는 것 같았다. 모든 삶의 발자취에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수천수만 가지 행복을 향한 발걸음들이 안양천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시로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고 당선이 되어 정류장에 걸린 것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부끄럽지만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겠다고 한번 더 다짐했다.


 긴 장마 기간 동안 생략했던 안양천 걷기 운동을 오늘부터 다시 시작했다. 한여름 무성히 자란 초록잎이 푹푹 삶아지는 것처럼 사방이 짙은 풀내음으로 가득했다. 덕분에 내 코는 향긋한 공기를 채우느라 고개를 반쯤 들어 계속 들먹들먹했다.
 걷다 보면 시가 나오고 즐거움이 생긴다. 많은 분들이 천천히 걸으면서 시도 짓고 건강도 챙기는 즐거운 여름날이 되길 바라며 ‘버스정류장 문학글판’에 응모하시라 추천드리고 싶다. 


 <자전거 응원가>
 김은진
 
 페달을 내딛으며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시원한 바람에
 주저하던 마음을 말리고
 
 오늘은 분홍꽃 환호성을
 귀에 걸어볼까요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에
 빙그르르 동그라미를 치며
 환한 햇살이 칭찬을 하네요
 
 잘했어요, 잘했어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집 근처 정류장에 내 시가?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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