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지난 8·15 광복절에는 특별히 행사가 많았다. 그중 하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것이다. 국민들은 촛불혁명에 이어 빛의 혁명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위기에서 일으켜 세웠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런 대한민국의 힘은 바로 항일 독립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학교에서 그리고 대중매체에서 자주 언급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요즘은 학생들이 유튜브를 많이 본다. 유투버 중에는 친일사관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도 많다. 그들은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매도하고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항일 독립지사들의 활동을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손안에 있는 작은 핸드폰을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고 학생들의 민족의식이 걱정될 때가 많다.
이번 광복절에도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이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입니다”라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괘변을 전 국민이 ‘경축사’로 들어야 했다. 일반 시민도 아니고 독립기념관 관장이나 되면서 이런 말을 하니 분노를 넘어 우려가 생겼다. 이런 생각을 갖은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 말이다.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일반 시민들도 독립군의 활약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최근 개봉된 영화 <독립군>을 보면 항일 독립지사의 치열한 활동이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배우 조진웅의 무게감 있는 내레이션과 우원식 국회의장, 소설가 방현석 그리고 박홍근, 김상욱, 김선엽, 반병율, 김을동, 정영순, 김용만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출연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홍범도 장군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고 독립군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배우 조진웅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현해서 전 국민이 다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는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와 독립군의 역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필자도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2년 전 있었던 논란이 떠올랐다. 2023년도 8월 25일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 수장고로 이전한다고 하여 논란이 일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홍범도 장군에 대해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폄훼했다.
당시 이렇게 이념 갈등을 부추기고 공산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국민정신을 억압하려는 정권의 민낯을 보게 되어 몹시 씁쓸했다. 그 후 일 년여가 지나 권력에 눈이 멀어 국민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으려는 정권은 계엄을 일으켰다.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다시 광화문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3·1 운동에서부터 시작된 독립운동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저항이 커질수록 백성들의 희생이 커졌고 홍범도, 김좌진, 안창호, 김구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은 국민을 지키고자 무기를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잔인하고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역사도 글도 전통문화도 모두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일본인들이 세뇌시킨 대로 열등한 민족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 <독립군>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려주었다. 일본의 앞잡이가 된 친일파 김원흥과 일진회 임재덕은 함경남도 북청군 인필골에서 두 아들과 살고 있던 홍 장군의 아내를 잡아다가 혹독하게 불고문을 하며 회유의 편지를 쓰게 했다.
“계집이나 사나이나,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숨이 없어지면 그뿐이다. 내가 설혹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아니 쓴다.”
장군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끝까지 고문을 견디며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홍범도 장군의 큰 아들인 홍양순은 아버지를 회유하러 갔다가 독립군이 되어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일본군에게 아들도 잃고 아내도 잃은 홍범도 장군의 가슴 아픈 사연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동순 시인(저서 나는 홍범도다)의 기록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은 어머니는 출산 과정에서 돌아가셨고 머슴살이를 하던 아버지마저 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홍 장군은 아무런 인맥도 없이 오로지 특출한 사격 실력과 전술로 큰 공을 세운 분이다.
2023년 육사에서 흉상을 옮기려 한 독립운동가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이었다.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다른 유족들의 반발이 거셌다고 한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더 홀대받고 문제가 됐던 데에는 유족이 없었던 탓도 있는 듯하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러시아 부두에서 하역노동을 하고 탄광에서 광물을 캤다고 한다. 말년에는 강제 이주해 온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경비로 일하다가 눈을 감았다고 한다.
영화는 독립운동 당시 일어난 안타까운 비극도 언급한다. 바로 간도참변(1920년)과 자유시참변(1921년)이다.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은 일본군을 대파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은 간도지역의 양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가옥을 불태웠다고 한다.
간도참변으로 독립군은 근거지를 러시아 연해주 자유시(러시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시)로 이동했다. 러시아로 이주한 일부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은 당시 볼셰비키혁명 후 내전 중이던 소비에트연방 적군(혁명군)에게 군사 지원을 받을 것을 기대했다. 적군은 독립군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려고 무장해제를 요구했으나 독립군은 거부했다. 러시아 적군의 총격으로 독립군의 희생이 있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영화는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안창호 선생 등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독립전쟁의 역사 속에는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의로움이 가득하다.
많은 국민이 관람하고 우리 민족의 고결한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바란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역사를 토론하는 시간을 갖으면 의미가 더 깊을 것 같다.
##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용입니다.
전 국민이 다 봐야 하는 '독립군' 학교에서도 보여줬으면 - 오마이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