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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추억을 만드는 데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by 김은진

아침 해가 떠오르면 염소집의 울타리의 빗장을 열어주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염소들을 따라 산기슭을 내려가다 보면 커다란 감나무가 있다.

감나무를 시작으로 허리춤까지 오는 돌담이 시작된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돌담을 칡넝쿨이나 덩굴 식물이 묶어 놓고 있다.

약 40여 평으로 둘러진 돌담 안에는 벽은 허물어지고 구들장만 남아 있는 집터가 있다.

대부분 밀려 내려오는 흙속에 파묻혔지만 가장자리는 드러나 있는 노란 장판지가 오랜 생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앞에는 작은 논이 골짜기 지형을 그대로 따라 곡선을 그리고 있고

돌담 뒤편으로 감나무 한그루와 호두나무 한그루 또 단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그리고 사촌 동생까지 와서 감도 따고 호두도 땄다.

완전히 다 따 가지는 않고 반만 따고 우리 집에 와서 따서 드시라고 말했다.

오래전 돌담집에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여기서 자식들과 살았는데 밤이나 낮이나 일만 하셨단다.

산에서 돌담을 만들만한 이쁘고 평평한 돌들을 지게로 지어다가 담장을 만드셨다고 했다.

돌담집의 주인 부부는 모두 돌아가시고 자손들만 20여 년 가까이 감을 따러 오고 있었다.

감을 따러 오실 때에는 커다란 자루를 들고 목장갑을 끼고 오셔서 긴 자루에 낫을 매다신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감을 따며 놀다 가신다.

예전에 이곳에서 고생 많이 했다면서

도시에서 사시면서 감을 따러 해마다 오시는 걸 보면 부모님이 그리우신 가보다.


귀농 전에 우리 아버지는 갑자기 심하게 외로운 가장이 되셨다.

하시는 일이 잘 되지도 않았고 사춘기가 되자 딸들은 아버지가 좀 불편했다.

마음은 아버지가 좋지만 어릴 때처럼 표현하기가 쑥스러워졌다.

어머니도 아이들 학업 스트레스를 받아내려니 좀 힘들 때도 많으셨던 것 같다.

성장하고 보면 학창 시절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민감해져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고향이 서울이 아니신 엄마는 또 나름대로 외로움이 있으셨을 거다.

아버지도 가장으로써 무게가 힘드셨을 거다.

그렇게 서먹서먹한 가족이 되어 갈 때 귀농을 하셨다.

까마득히 둘러봐도 산중이고 대화 상대라고는 가족밖에 없다.

그러니 정이 깊어질 수밖에.

사람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모른다.

관계라는 게 무작정 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이루려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밖에서 활동적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시는 분이 가정도 편안하게 하기는 어렵다.

가족보다는 타인을 만나 채우는 시간이 더 많은 도시 생활을 하시면서

해마다 감을 따러 오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추억이 많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농촌의 삶이 힘들지만 얻는 것도 많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공자님 말씀을 줄줄 외운다 하더라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그만이다.

농촌에 살면서 무언가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공부와 학원 같은 교육시스템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잘 뿌리내리길 바란다.

자연을 관찰하기도 글쓰기 하기도 사진을 찍기도 도시보다는 농촌이 이점이 많다.

어른이 되어서도 금수저, 흙수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삼시세끼 밥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은데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할 수저에 민감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은 부모의 고단함을 알아야 하고 부모도 자식의 외로움을 헤아려야 한다.

사회가 각박하니 가족이 좀 더 따뜻해져야 한다.

돌담집 아저씨가 심어 놓으신 감나무 덕에 우리도 행복했다.

아버지와 나도 감 따기에 꽤나 열을 올렸었고

따온 감들 중에 상처가 난 것은 껍질을 깎아서 곶감으로 만들고

상처가 나지 않은 것은 장독에 넣어서 물렁해지면 겨울밤 좋은 야식거리가 되었다.

달콤한 감을 먹으면서 가을과 겨울에 걸쳐 오래도록 즐길거리를 생각해주신

돌담집 아저씨께 감사하다.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감들이

아저씨의 마음처럼 빨갛게 익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예쁘게 매달렸다.

추억을 만드는데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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