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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Dec 14. 2022

어머니의 김치볶음

하루에 김치 한 폭씩 볶아 주시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 

우리 집 도시락 반찬은 일 년 12달 중 7달은 김치볶음이었다.

여름방학 2달과 겨울방학 2달을 빼고 봄방학 15일을 빼면 나머지 15일 정도가 남는데

이때는 콩나물무침과 어묵볶음이었다.

어묵볶음은 거의 둘째 언니가 완전 킬러였기 때문에 

프라이팬에서 반찬 통에 담을 시간도 없이 바로 품절되었다.

아.....나의 번민의 시작은 바로 점심시간에서 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김치볶음을 매일 싸가니 같이 먹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머니는 좀 작게라도 썰어주실 것이지 반찬통만 한 크기로 썰어 주시니 

비주얼이 일단 반 친구들에게 부담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에 점점 나는 살 뺀다고 거짓말을 하며 도시락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도시락을 펼쳐서 먹었는데 

다 먹고 나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똑같았다.

'우리 집 김치볶음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네!'

그리고 내일은 친구들 앞에서 이 커다란 김치볶음을 꼭 자랑스럽게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다음 날이면 또..... 내 마음은 어색하게 반찬통을 여는 것보다는

살 빼는 쪽으로 기울었다.

사실 어머니도 계속 김치볶음만 싸주려고 하신 것은 아니었다.

가끔 오징어채나 멸치를 볶기도 하시고 계란 프라이도 하셨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징어채와 멸치는 딱딱해져서 입천장을 뚫을 기세였고

계란 프라이는 짰다. 그리고 불고기 같은 건 절대 싸주지 않으셨다. 

집에서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다는 설명이셨다.

이런 어머니의 요리 실력은 어머니에게 한국인은 김치가 최고라는 신념을 갖게 했다.

반면 나는 도시락 반찬의 세계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도시락 반찬 세계의 1위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에 케첩을 쿠킹호일에 살짝 담아온 친구와

옛날 소시지를 계란물에 파송송 썰어 넣고 약간 갈색이 나게 부쳐온 친구였다.

2위는 스페셜 계란말이와 매콤 달콤한 오징어채였다. 스페셜인 이유는 계란 사이사이 김이 있거나 

당근과 파가 보기 좋게 섞여 있어야 했다.

3위부터는 그냥 반찬이었다. 어묵볶음이나 각종 무침, 돈가스를 구워온 것 등이었다.

그럼 우리 집 김치볶음은 몇 위일까?...... 등수에 없다. 맛있지만 현실은 참담해지는 묘한 김치볶음!

학급에서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면 그 아이가 집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찬밥인지 더운밥인지 말이다.

난 물론 우리 집에서 가장 따끈따끈한 밥이었지만 도시락 반찬은 어머니 능력 밖의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큰 언니와 의논해서 직접 1위 반찬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옛날 소시지를 사서 계란물을 풀고 파송송 다져 넣고 하는 것은 큰 언니가 하고

프라이팬에 부치는 건 내가 했다.

결과는 대~성공~. 너무 예뻐서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먹고 싶었지만 잘 참고 나는 다음 날 점심시간만 기다렸다.

그리고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친구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히히히! 나는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랐다.

큰 언니~같이 반찬 만들어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도시락통을 꺼내 작은 아이 도시락을 준비한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분들이 한꺼번에 코로나 확진을 받으셨단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주에는 빵이나 떡이 나오는데 

한 번은 엄마가 김밥을 싸줘야 한다고 귀엽게 부탁하는 아이에게 알았다고 했다.

예전에 도시락 때문에 나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요즘은 급식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다. 

내일은 오래간만에 실력 발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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