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크티 라떼 Dec 20. 2022

1분간 정차합니다.

아슬아슬한 추억과 낭만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번 역은 천안, 천안역에서 1분간 정차하겠습니다."

삽교역에서 장항선을 타고 1시간 정도 지나면 천안역에 도착한다.

열차가 서서히 플랫폼에 들어서면 플랫폼에 있는 매점과 가장 가까운 쪽에 내리기 위해

사람들은 창밖으로 매점의 위치를 확인하며 어느 칸에서 내릴지를 확인한다.

마치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환승 출구와 가까운 곳에 내리려고 옆칸으로 이동할 때처럼 말이다.

열차가 완전히 서기 전에 바로 매점 앞에서 내릴지, 그곳에 사람이 너무 몰려 있으면 옆칸에 내려서 빨리 매점으로 달려갈지 마음을 정해야 한다.

열차는 단 1분간만 정차하기 때문이다.

입구 쪽에 사람들이 천 원짜리를 들고 재빨리 내릴 준비를 한다.

그리고 모두 매점 앞에 서서 천 원짜리를 건네자마자 스티로폼 그릇(지금의 사발면 그릇)에

가락국수라는 우동면이 담긴다.

천안역 플랫폼의 국숫집 사장님은 1초에 한 그릇도 모자라 두 그릇, 세 그릇씩 판매하신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1분 안에 가락국수를 들고 모두 의기양양해져서 기차 안으로 들어왔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천안역 매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갈때면 무궁화호나 통일호를 타고 다녔다.

무궁화호를 타면 2시간이 걸리고 통일호를 타면 30분 정도 더 걸렸다.

천안은 서울과 삽교의 딱 중간 정도였다.

천안역에 오면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온다.

"이번 역은 천안, 천안역에서 1분간 정차하겠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가락국수 먹자!" 말씀하시고는 바람처럼 사라지신다.

열차 플랫폼에 매점이 있었다. 김이 펄펄 나는 매점 앞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서 있던 모습이 생생하다.

매점에는 가락국수도 팔고 호두과자도 팔았는데 국수가 인기가 제일 좋았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모두 단 1분 안에 가락국수를 사서 탑승한다.

"이제 열차가 출발합니다." 하는 방송이 나온다.

기차가 다시 출발하려고 하니 걱정스럽게 창밖을 보면 그 많은 무리의 사람들 중에 아버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고 아직 매점 앞에 가지도 못하셨네 이제 곧 열차가 출발할 텐데 괜히 국수 먹고 싶다고 했나 보다 하고 속상해하고 있으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온통 울상이 되어 아버지는 어떻게 되신 걸까 걱정하고 있으면 잠시 후 아버지가 나타나신다.

양손에 가락국수 한 그릇씩 들고......

아~~ 안 먹어도 되는데...... 너무 아슬아슬하다.

난 생각하며 그릇을 하나 받아 들고 먹기 시작하면 정말 맛있다.

아버지도 젓가락질 서너 번에 가락국수 한 그릇을 다 드시고는 "아! 맛있다"하신다.

난 어떻게 1분 안에 국수를 사 오셨냐며 날아오셨냐며 신기방기 해한다.

가락국수 한 그릇은 달리기 시합에서 우승해서 받은 상패처럼 보인다.


나에게 기차란 이렇게 1분 안에 가락국수를 사 오는 곳이다.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기차에 잠깐 내려서 곧 떠날지도 모르지만 설령 기차를 놓친다 해도 가락국수를 먹고야 말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갖는 곳, 아슬아슬한 추억과 낭만이 남아있는 곳이다.

두고두고 그 1분이 평생의 즐거움과 따뜻함으로 남는 곳이다.

요즘 두세 시간씩 기차를 타고 갈 때도 작은 추억 하나는 남기고 싶어 이런저런 글을 적게 되는 곳이다.

전에는 국수와 국물에 고춧가루뿐이었다.

국숫집에 옛날 사진이 있어서 찍왔다.

오늘 먹은 가락국수는 여러 가지가 들어가 있다.

그래도 기차에서 먹었던 추억의 가락국수가

그리워지는 하루다.

특히 아버지는 라면보다는 국수를 좋아하셨는데

언젠가 예산시장 뒷골목에 국수 말리는 것을 보고

오셔서 국수가게를 하고 싶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엄청 핀잔만 들으셨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카시아 향기가 글향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