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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Jan 03. 2023

백로의 성찰

2023년의 시작은 백로와 함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있다. 예전 일들이 생각나 갑자기 창피해지기도 하고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몇몇 떠오르기도 한다. 아주 재미난 일들이 불쑥 떠올라 빙긋이 웃기도 한다.

주로 천변을 걷거나 근처의 얕은 산을 오를 때가 그런 시간이다.

천변을 부지런히 거닐면 허공을 바라보고 걷지만 생각은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집에서 괜한 잔소리를 한 게 후회되고, 한마디만 하고 밖으로 나올 걸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하고 

후회된다. 인내심을 좀 더 키우고 싶다.

집에서 그냥 웃어넘길 일도 너무 날을 세운 것 아닌가 반성하며 허공에다 '좀 더 참아야지.' 하며 입김과 함께 

한숨을 내뱉어 본다.

그때 고개를 돌리니 대백로가 있다.

잔잔한 물가에 두발을 담그고 서있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물고기들이 살아있을까 걱정스러운 하천에 서 있다.

하천의 바닥을 바라보며 서 있는 백로는 꼭 먹이를 구하는 것 만 같지는 않다. 

백로의 모습이 거울처럼 그대로 하천에 비친다.

마치 청동 거울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물 위에 비춰보고 있는 것 아닐까.

날마다 날마다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홀로 거울처럼 물 속을 들여다본다.

무리 지어 다니는 오리 떼도 비둘기 떼도 참새들도 많지만 백로는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을 바라봐야 할 때는 무리 지어 있을 수 없다.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짓기도 하고 목을 세우기도 하는 백로를 나는 지켜본다.

자신을 바라보고 다독이는 모습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고 외롭거나 오만해 보이지도 않는다.  

나도 저런 모습이고 싶다. 

아이들은 크는 중이고 앞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 될 아이들이니 자꾸 지적하는 건 좋지 않다.

저기 하천의 백로처럼 우아하게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내 모습을 얼른 지운다. 

그리고 다시 웃고 다정한 얼굴이 되려고 얼굴 근육을 푼다.

백로의 고고한 모습을 보니 작은 일에 시끄럽게 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고요한 성찰을 방해하지 말고 조심히 지나가야지 생각하며 조심히 발걸음을 옮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더 강해지고 더 아름다워지길 빌 뿐이다.

한 없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지만 사진을 찍느라 다가갔더니 날아오른다.

날아오는 모습도 멋지지만 조금 떨어져서 조심스럽게 오므릴 때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

비록 큰 강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안양천이라는 작은 하천에서 먹이를 구하지만 

멋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우아하고 멋진 새가 내가 사는 곳에 찾아와서 기쁘다.

글을 읽는 선비를 백로에 비유한다. 나에게 좋은 글 많이 읽고 사소한 일로 마음을 흐트러 트리지 말라고 충고를 해주는 듯하다.

아주 힘든 순간에도 글자에 집중하고 있으면 힘든 마음이 사라지곤 한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지만 정말 힘들 때는 글자를 읽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

멋진 선비 백로를 휴대폰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더니 화질이 별로다.

하지만 그 자태는 우리의 마음속에 그늘을 지운다.

아름다운 시간을 화로 분노로 원망으로 흘려보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안양천에 친구 백로는 그렇게 나를 힐끔 쳐다보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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