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기 Mar 05. 2019

아팠던 순간도 사랑이라 여겼다.

이제 그만, 

사랑하는 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과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부터 당신과 만나기로 한 오늘까지 매일 설레어 일주일을 보내왔는데, 당신과 약속을 잡지 않은 앞으로의 시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야 할까 벌써부터 겁이 나요. 굳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퇴근하고 시장을 봐서 집에 들어가는 것, 주말이 되면 늦잠을 실컷 자고 청소를 하는 것,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산책을 하는 것, 좋아하는 영화들을 다 몰아서 보는 것, 이 모든 게 사랑이었다면 그래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던 거라면 그냥,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들을 줄줄이 나열해서라도 그러고 싶었어요. 무척이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는 있겠죠. 요즘엔 점점 혼자서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별것 아닌데도 혼자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갑자기 화가 날 때도 있어요. 그리고는 되물어요. 이런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니. 아직은 때가 아닐걸 수도. 그렇다면 참고 기다려야 하는 걸 수도. 당신을 좋아하는데 내 마음이 이렇게 편하고 괜찮다는 게 참 이상해요. 아니, 적응이 되지 않아요. 예전의 나라면 분명 지금쯤은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더군다나 거기에 비까지 오니 나의 마음과 자존감은 바닥을 쳤어야 했겠죠. 왜 표현했을까. 왜 그렇게, 이렇게 말했을까. 왜 먼저 연락했을까. 하면서 곱씹고 곱씹으며 나 스스로를 사랑해서는 아니,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겠죠.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요. 내 마음을 몰라주는 당신에게 울며불며 얘기해볼까. 내가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거냐고. 늘 기다려야 했고, 마음이 아프고 다쳐야 했으며, 사랑받지 못했어요. 나. 이런 내가 요즘에 또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니요. 사랑이 무엇인데 나는 또 그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걸까요. 누군가와의 만남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가도 어쩔 때면 부러워요. 나는 겉보기에는 참 활발하고 밝은 성격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우울한 부분들을 꽤나 많이 가지고 있고, 적극적인 것 같으나 소심하고 어려워하는 것들도 많고.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젠. 내가 목을 매는 사랑.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사랑. 나를 기다리게 하는 사랑.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아주지 않는 사랑. 너무 아플 것 같은 사랑.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아프고 싶지도 않아요. 사랑은 설레는 건데. 나는 맨날 아팠어요. 나는 힘들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사랑이라 여겼어요. 바보같이. 이제는 정말 이제는, 아프고 싶지 않아요. 상처 받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랑, 하고 싶지 않아요. 나도 나를 지키고, 사랑해주고 싶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단순하고도 정확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