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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동지들, 몸값을 절대 낮추지 맙시다

열정은 결국 돈에서 나온다_ [좋댓구알을 받는 대본에는 공식이 있다]

by 후리랜서 작가

막 채널을 시작해서 정해진 포맷이 없는 클라이언트의 경우. 초반에 3~5회 정도 대본을 써주고 나면 그다음부터 주문이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절대 당신이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잘해서 그렇다.



만약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1회차에서 끝났을 것이다. 당신이 좋은 포맷을 뽑아줬지만, 단지 작업료가 비쌌기 때문에 그 대본을 표본 삼아 당신보다 저렴한 작가한테 양산을 맡기는 것이다. 즉, 당신이 작업한 대본을 다른 작가들에게 주면서 ‘이렇게 써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나 또한 햇병아리 시절에 다른 작가님이 작업한 양식 두어 개를 받은 적이 있다. ‘이 구조에 맞춰서 써주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른 작가는 어떻게 쓰는지 배울 기회였다. ‘아, 이렇게 짜는구나’ 참고했고 그걸 기반으로 나만의 포맷을 만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내 대본 또한 초보 작가님들께 참고가 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위와 같은 이유로 주문이 끊겼을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억울할 필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만든 대본을 다른 작가에게 주고 참고하라고 한들, 실력이 없는 작가라면 결코 양산은 불가능하다.


플롯은 공식이다. 하지만, 공식만 있다고 다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인트로-바디1-브릿지-바디2-아웃트로’의 구성은 흔해 빠졌다.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 틀을 어떤 문장으로 채우느냐다. 그게 실력이 된다.


후킹을 넣는 센스, 기존의 채널과 톤앤매너를 맞추는 감각,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캐치하는 요령이 모두 실력이다. 무엇보다 내가 작업한 대본은 출연자의 특성을 고려해서 디자인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양식만 베끼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런 식으로 ‘나중에 연락드릴게요’라는 말만 남겨두고 작업비를 적게 받는 작가에게 갔다가, 구독자만 떨어뜨리고 다시 돌아오는 클라이언트도 종종 봤다.



잘해서 주문이 끊겼다?

그건 당신의 대본이 ‘정답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결국 실력 있는 작가만 살아남는다. 나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작가에게 일감을 빼앗겼다고 해서, 내 대본이 시장에 뿌려진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도 단가를 낮춰야 하나?’ 같은 고민은 더더욱 필요 없다. 그런 생각은 내 가치를 깎는 지름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클라이언트가 초반 5회차 혹은 10회차까지의 대본만 뽑고 나를 떠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사실 10명 중 6명이 그렇다. 나머지 4명 중 3명은 얼마 못 가 유튜브 자체를 중도 포기하고, 나머지 1명만이 단골이 되어 쭉 같이 간다.



이 생태계에서 작가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단가를 절대 낮추지 않는 것이다.



특히 초반 기획 단계에서는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포맷을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획 작가의 역할까지 하면서 고료를 적게 받는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초보 작가가 대본 한 건을 주문받았다. 클라이언트는 개인 유튜버고, 신생 채널이다. 작가는 결심한다. ‘시간당 2만 원은 받아야겠어!’ 대본을 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얼추 5시간으로 잡았다. 그럼 대본 하나에 총 10만 원이다. 작가는 내심 만족한다. ‘최저 시급(현재 약 1만 원)보다 2배는 받겠네!’ (실제로, 본업이 따로 있거나 전업주부인 작가는 이것보다 낮은 단가라도 흔쾌히 한다. ‘노느니 차라리 일하지’라는 심리로, 최저 시급보다 적게 받아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다. 불법도 아니요, 나쁜 일도 아니니, 그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프리랜서의 인건비가 낮아지는 구조적 문제다.)



그런데, 정말 최저 시급보다 많이 남을까?



계산해보자. 클라이언트와 상담하는 시간(컨셉 조율, 구체적인 요청 사항 확인, 러닝타임 논의 등)만 최소 30분이다. 정말 최소로 잡았을 때가 그렇다. 작가는 혼자 머리를 굴리며 여러 채널과 자료를 조사하며 대본의 전체 틀을 짜본다. 이렇게 기획하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린다. 대본을 집필하는 시간은 처음 예상대로 5시간. 마지막으로 검토하는 데 30분을 쓴다. 작업물을 전달했는데 만약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또 1시간을 써야 한다. 총합 8시간. 결과적으로 시급은 12,500원이 된다. 실제 작업 시간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걸리게 되어 있다.



‘최저 시급이랑 비슷하잖아?’ - 작업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면 작업물에 대한 애정이 놀랍도록 빠르게 식는다. 가성비가 안 나오는 것 같고, ‘이 시간에 다른 작업을 맡을걸’-하는 후회가 든다. 정성을 쏟기 싫어진다. 주문을 받아 버렸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하지만, 처우에 대한 불만족은 글에 드러난다.



누가 최저 시급을 받으면서 야근을 자처하겠는가?




그래서 단가는 높게 불러야 한다. 대본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잘 쓰겠다는 자신이 있을 때도 그렇다. 앞서 ‘대본은 잘 쓰는 게 아니라, 연출진에 잘 맞추어 쓰는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그동안 맞춤 디자인을 잘 해냈다면, 어느 순간 이런 확신이 들 것이다.



‘이 클라이언트는 나만큼 잘 맞는 작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나는 이 채널과 정말 잘 맞다. 클라이언트도 그걸 알고 있다.’



그때가 바로 몸값을 올릴 타이밍이다.

작가와 제작사 사이에도 궁합이 존재한다.



괜히 ‘높게 불렀다가 일이 끊기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에 단가를 낮추게 되면, ‘저렴한 맛에 쓰는 작가’로 고정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작가로서는 딜레마에 빠진다. 해당 클라이언트가 단골이라서 고맙긴 한데, 시간 대비 수익은 최악인 손님이 된다. 계속 끌고 가자니 손해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 끊자니 아쉽다. 서로에게 계륵이 된다.


단, 단가를 지킨다는 전략은 본인이 실력자일 경우에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경력이 부족하다면 단가를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포트폴리오와 경험을 쌓아야 한다. 나 역시 초창기 시절에 그렇게 성장했고, 지금은 다른 초보 작가들이 내 대본을 참고하고 있다. 이것이 프리랜서 시장의 생리가 아닐까?


실력이 있고 자긍심이 있다면, 단가를 낮추지 말자. 잘 쓸 자신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가격을 부르는 게 옳다. 설령 주문이 끊기는 순간이 오더라도 시세에 끌려가지 말자. 한 번 단가를 낮추면 내가 클라이언트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나를 고르는 구조가 된다. 돈을 벌려다가 더 힘든 길을 걷게 된다.


내 몸값을 내가 정하자. 내가 원하는 금액도 기꺼이 지불할 의뢰인이 반드시 있다. 사실 넘쳐난다. 좋은 대본을 원하는 제작사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결국 내가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대가를 받아야 글에 정성을 쏟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그것이 또 재주문으로 이어지면서 오래오래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속 가능한 근무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보상에서 시작된다.



같은 맥락에서, 클라이언트 역시 대본에 쓰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규모가 있는 제작사의 경우 전체 예산 중 원고에 쓸 비율은 정해져 있다. 대략 10% 내외인데, 사실 그마저도 쓰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성의와 정성은 결국 돈에서 나온다. 제작자 본인도 누군가의 직원이나 하청 혹은 파트너이기 때문에 십분 이해할 것이다.


고수에게 저렴한 대본을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경력자는 대본을 쓸 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100가지인 것을 알지만, 초보는 5개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경력자라고 해서 무조건 고퀄리티의 대본이 나오거나 초보라고 해서 무조건 질이 낮다고 치부하는 게 아니다. 확률상 그렇다는 뜻이다.)


‘신경 쓸 일은 많은데 고료는 적다?’ 일감이 많아서 쳐내기 바쁜 작가가 굳이 그 일을 맡아 줄까? 매일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는 식당에 가서 절반 값에 밥을 해달라고 하면, 사장님이 선뜻 내주겠냐는 말이다. 작가가 의뢰를 받지 않을뿐더러, 설령 받는다고 해도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 대비 수익에 맞추려면 그 작업을 빨리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본을 저렴하게 뽑고 싶다면, 인건비 역시 저렴한, 경력이 부족한 작가에게 맡기는 게 맞다. 그래야 작가도 ‘이 정도 고료면 나쁘지 않지’라며 기분이 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에 임할 수 있다. 그런대로 남는 장사가 되기 때문에 성의를 담는다. 클라이언트와 작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료에 돈을 많이 쓰겠다!’, ‘제작비가 많이 들더라도 웰메이드 대본을 원한다!’라는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초보 작가보다는 실력자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흡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신입에게 10년 경력직 작가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예산이 적으면 작업료 또한 저렴한 작가에게 맡기고, 예산과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비싼 작가에게 맡겨야 성공 확률이 높다. 서로의 기분도 상하지 않을 수 있다. 몸값이 높은 작가에게 ‘싸게 해달라’라는 말을 해서 괜히 자긍심을 깎지 말고, 막 전선에 뛰어든 신입 작가에게 무리한 기대를 걸었다가 ‘돈 날렸다’라며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감이 온다. 어떤 의뢰인이 나와 잘 맞는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의뢰를 가려 받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본인의 채널에 애정이 없거나 희망 사항을 본인조차 모르면 주문을 받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최소한 설계도는 줘야 나도 뭘 해주지, 두루뭉술하게 요구하면 나도 두루뭉술한 대본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밤이나 새벽에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 대본을 두고 ‘얼마짜리’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 오늘 의뢰해놓고 당장 내일 대본을 달라는 사람, 등은 가능하면 피해야 수명이 늘어난다. 물론 작업량이 많지 않은 초기에는 주문을 가려 받을 처지가 아니겠지만, 경력이 쌓이고 단골이 늘어나면 그때부터는 상담도 가려받는 게 좋다. ‘될만한 주문만 받는 것’은 재주문율과도 연결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초보 작가님이 언젠가 클라이언트와 대본이 ‘뻔해져서’ 수월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프리랜서 작가는 진입 장벽이 무(無)에 가깝고 턱이라고 부를 만한 것 자체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뛰어들 수 있고, 그러한 이유로 어떤 직종보다 작업비가 낮게 책정된다.


비록 시작은 치열하고 서럽지만, 단골이 생기고 몸값을 키우다 보면, ‘이것만큼 효율이 좋은 직업이 있을까’ 싶은 순간이 올 것이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 운동부터 하고, 하고 싶은 일감을 골라 작업하고, 언제든지 시간을 조율해서 외출할 수도 있다.


24시간. 잠을 자다가도 주문이 들어오는 알림 소리에 벌떡 일어나고, 주말 없이 몇 년을 일하다 보니 그런 시기가 나에게도 왔다. 나는 재능도, 필력도, 하물며 잘 쓰려는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는 게으른 인간인데 말이다. 그러니 돈을 내고 작법서까지 사 읽는 여러분이라면, 더욱 훌륭한 대본을 쓰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작가가 될 것이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유튜브대본쓰는법 [좋댓구알을 받는 대본에는 공식이 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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