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할아버지를 서울로 모셨다. 타향살이 13년 차, 남도의 고향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효도관광 분야에서도 어느덧 13년 차 베테랑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몸을 덜 움직이면서도 깜짝 놀랄만한 것을 보여드릴지, 어떻게 하면 고향엔 없는 음식과 맛으로 감탄사가 나오게 할 수 있을지는 대략 정해져 있었다. 이번 해 신임 대통령이 용산으로 거처를 옮기며 처음 개방된 어른들의 필수 관광 코스 '청와대' 정도를 동선에 더하고 예약을 해두는 수고로움이 더해졌을 뿐,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0시 30분, 가장 이른 예약 시간에 청와대 구경을 마친 뒤 7분 정도를 걸어 삼청동의 한정식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청와대 관광의 반응은 예상대로 폭발적이었으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꽤나 긴 동선을 할아버지의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리란 것까진 미처 예상치 못했다. 내가 알던 할아버지는 매일 2만 보를 걸으시는 분이다. 식사를 하시는 할아버지를 살피며 요즘도 운동하시냐고 여쭤보니,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그 절반 정도만 걸으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뿔싸. 이 모자란 손녀 같으니.
삼청동에서 다음 코스인 경복궁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걸어서 이동했으나, 생각보다 느려진 할아버지의 걸음이 눈에 밟혀 결국 광화문 언저리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뒤로 젖혀지는 리클라이너 소파에서 할아버지는 잠시 눈을 붙이셨다.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는 것인지, 아니면 한낮의 단잠인지 약간 혼란스러웠다.
코스는 대폭 수정되었다. 출퇴근할 것 없이 막히는 서울 시내를 관통하기 싫어 내버려 둔 차를 다시 끌고 내리자마자 둘러보고, 달리자마자 닿을 수 있는 곳을 가기로 했다. 검색창에 '할아버지 서울 구경'을 검색했지만 우주 만물이 다 튀어나온다는 인터넷도 별다른 신통한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사실은 아니겠지만) '할아버지 데리고 여행 다니는 손주는 세상천지 너밖에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다시금 가슴이 묵직해졌다. 서울 지도를 펼치고 스마트폰을 문지르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망원동...은 아니고 궁궐, 홍대...도 아니고 아쿠아리움, 아울렛...도 아니고 전망대, 강남역...도 아니고 공원, 성수동...도 아니고 호수... 물망에 오른 곳들을 보자니 연관 검색어는 '할아버지 서울 구경'에서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이 차라리 더 어울릴 법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옛말이 그렇듯, 그 말이 나에게 해당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가 집에 없던 후로 할아버지는 나에게 아빠나 다름없었다. 겨울이면 귤 한 박스를 안고 퇴근하셨고, 단어 맞추기 놀이를 같이 해주셨고,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지금도 여전히 175cm의 장신이시며, 허리도 꼿꼿하시다. 하루 만 보를 걸으시고 매일 시장에 가신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입에 맞으실까 고민하며 모셔간 식당에서 내가 시켜드린 음식을 드시며 연신 맛있다고 하시는 할아버지가 언제부터 저 건너 테이블의 유치원생과 닮아지셨을까. 9살 나에게 학교 앞에서 돈가스를 사주시던 할아버지는 왜 내가 시킨 돈가스를 '처음 보는 음식'이라고 하시게 된 걸까. 어릴 적, 힘차게 그네를 밀어주시던 그 정정하던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시나브로 아이처럼 되셨을까. 어른이 더 많이 어른이 되고 더 크게 어른이 되어 결국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새를 메운 수십 년이란 시간은 어디로 증발해버리는 걸까.
'한번 사는 인생'이란 말이 있다. 어떤 무모한 일에 도전하며 내가 끌어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끌어모아야 할 때나, 하면 안 되리란 예감이 어렴풋이 들지만 에라 모르겠다 막무가내 심정으로 그 일을 하려고 할 때 내뱉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의 이름이다. 아무리 애써도 헤아릴 수 없는 어른들의 변화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지난날을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결국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지금이 좌표 위의 순간만큼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20대 초반 후배들의 밈을 알아듣기 힘들어지고, 문장 끝에 점을 찍는 횟수가 늘어나고, 취업과 결혼에서 내 집 장만과 육아로 대화 주제가 바뀌어가는 날들을 세며 어느 시점부터 나도 아이로 다시 변해갈지 가늠해보지만 불가능이다. 스물둘 사촌동생에게 '진짜 좋을 때다'라고 말하는 나의 스물두 살엔 '대학교 3학년 늙은이'라는 말이 늘 꼬리표처럼 달려있었다. 이제 곧 30대 중반이라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는 나에게 대여섯 살 많은 언니들은 '진짜 좋을 때다'(자매품 '내가 니 나이만 됐어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어쩌면 연둣빛 잎은 짙어지고 짙어져 초록색, 진녹색이 아니라 더 깊은 연둣빛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 모든 걸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 그땐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