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시계는 칠흑같이 어두운 섣달 그믐날의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가 꼬맹이 시절 할아버지는 포마드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말끔한 머리를 한 채로 기사 딸린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시는 대기업의 임원이셨다. 가끔 시골 큰 아들 집(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맛있는 과자며 사탕 등 손녀들의 간식거리를 잔뜩 사 오셨고,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계시는 기간 동안은 우리 집 반찬의 수준은 급이 달라졌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철 없이 마냥 좋았다.
나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세월은 꼬박꼬박 흘러갔고, 할아버지의 시간도 예외 없이 흘러가 이제는 90세를 훌쩍 넘어 100세를 바라보신다. 시간만 흐른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의 기력과 기억력, 그리고 경제적인 능력까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는 한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메말랐고, 혼자 힘으로는 걷지도 못하셨으며, 소리로 부터도 멀어지셨다. 급기야 최근에는 대소변 실수도 곧잘 하셨고, 희뿌연 안갯속을 헤매듯 정신을 놓으시는 일도 잦아졌다.
늙으면 또는 치매에 걸리면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잃어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지금 내 키가 할아버지 무르팍 언저리만큼이었던 시절로 돌아가셨는지 나를 볼 때마다 당신의 무르팍 높이에서 손을 휘저으며 "요만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노?"라고 물으신다. 내가 낳은 자식들도 이미 할아버지 무르팍 높이를 넘어 허리춤까지는 오는데, 할아버지의 기억은 이미 저만치 앞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되돌아올 줄 모른다.
대소변 실수가 잦아지고 치매로 정신을 놓으시면서, 아직도 일을 붙잡고 계시는 70세가 훌쩍 넘은 아빠와 엄마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돌보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간혹 정신이 돌아오시면 큰 아들 내외에게 미안하다며 당신이 사시던 과천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고, 요양 병원엔 절대 가기 싫다고 하셨다. 그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할아버지를 과천 당신의 집에 혼자 두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에 할아버지는 벚꽃이 흩날리던 날에 요양 병원에 모셔졌다.
요양 병원은 내가 다니는 회사와 가까운 곳이었고, 그 이유로 바쁜 아빠와 엄마를 대신하여 할아버지 면회를 가게 되었다. 아직은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아 비대면으로 면회를 진행했다. 유리창 너머로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 멍한 표정의 할아버지는 역시나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 이름을 크게 이야기해도 듣지 못하셨고, 결국은 요양 병원의 요양 보호사를 통역관 삼아 어렵게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다. 요만했던 명이가 언제 이렇게 컸으며, 멀리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고 하셨다. 멀지 않다고 가까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멀지 않으면 자주 오라고 하셨다. 네가 자주 와 주면 너무 좋겠다고 하셨다. 자주 오겠다고, 아빠 엄마도 바쁜 일이 끝나면 곧 뵈러 올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잘 못 들으시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와 내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창, 꼭 써야만 하는 마스크가 우리의 대화를 힘들게 했다.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고, 또 오겠다는 자주 오겠다는 말을 하면서 손을 크게 흔들어 할아버지를 병실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렇게 크고 멋지던 할아버지는 지금 요양 병원의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외면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서 소멸되어가고 있다. 희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와중에도 손녀가 당신을 보러 자주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초라하게 사그라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삶이 슬펐고, 요양 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할아버지의 요양 병원에 면회를 다녀온 후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휠체어에 앉아 내가 건넨 주전부리 과자를 들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 잔상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와중에도 불쑥 떠올랐고 아이들과 노는 와중에도 뜬금없이 찾아왔으며, 잠이 까무룩 들다가도 생각이 났다. 그러면 어김없이 슬퍼졌고 물색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자연의 순리와 이치대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늙고 쇠약해져 가는 것이리라.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듯이 할아버지의 늙음도 붙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리라. 그저, 섣달 그믐날의 자정까지, 할아버지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건강하고 평안하게 지내시다가 자정을 맞이하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