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유발자들 6
어릴 때 어렴풋이
제사라는 게
꼭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 아니라,
어른들이 돌아간 후에도 모일
자손들의 정기 모임을
만들어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의미로 제사가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명절은 그 의미가 희석된 듯
제사문화가 급격히 축소되고
해외여행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빨간날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제사라는 공통된 방식으로
명절을 보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각 집마다
명절의 모습이 다양해졌음에도
혹자는 과거의 단단했던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곤 한다.
그런데
사라진 도로 위 차량행렬과
제사음식을 음복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문득,
가족, 공동체의 해체가 완화되려면
역설적으로
개인의 이탈을 수용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모두에게 맞는 옷은 없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생각은 다릅니다.”
“이것은 현재와 안맞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이탈자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
공동체의 모습이 있어야만
이탈자들은 그 안에서
마음껏 숨을 쉴 수 있고,
공동체는 결속력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인간에게나 ‘소속감’이라는 감정은
커다란 안정감을 준다.
그런 안정감을 뒤로 하고서라도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하나의 틀에 판박이처럼
찍혀나오길 바라는 공동체의 모습이
퍽 잔혹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상념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 틀에서 벗어나
연휴를 각자에게 즐거운 방식으로 보내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더 반갑게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각자의 ‘이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탈을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사회적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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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인 <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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