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유발자들 2
가끔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을 함께 겪다 보면
동료에게 전우애 같은 감정이 생길 때가 있다.
군대에서나 생길 법한 감정을
회사에서 느낀다는 건
다시 말해,
굉장히 고통스러운 임무를
함께 수행했다는 의미다.
그런 전우애가 생기면
대개는 인사이동이 되고 난 뒤에도
가깝게 지내며
퇴사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 둘도 없는 전우애가 생겼다 할지라도
가끔은 인연을 돌아서야 하는 일이 생긴다.
A선임은 내가 있던 조직에서
오랫동안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유능했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한 시간은 고됐다.
보고가 주된 업무였던
우리는 수없이 문서를 갈아엎었고,
새벽 퇴근과 주말 출근도 잦았다.
문서 버전은 수십을 넘어갔고
어떤 기간에는 몇 달을 거의 쉬지 않고 일했다.
당연히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동료 사이의 관계 덕분이었다.
같이 버티고, 같이 욕하고, 같이 웃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A선임과도
꽤 단단한 전우애가 생겼다고 믿었다.
그가 다른 포지션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A선임은 우리와 함께 쌓은 커리어를
발판 삼아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갔다.
그가 떠난 자리를 채운 사람은 B선임이었다.
새로 온 선임은 처음부터
우리와 업무 방식이 맞지 않았다.
업무는 더 거칠어졌고,
효율은 더욱 눈에 띄게 떨어졌다.
조직 안에서는 빠르게 피로가 쌓여갔다.
나는 A선임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업무 강도가 더 높아졌고,
일의 방식이 심각하게 어긋나고 있다는 걸,
A선임이 알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리를 옮긴 뒤에도
조직 안에서 영향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었고,
언젠가 한 번쯤은 그 이야기가
현실에 반영되기를 바랐다.
그 무렵, A선임과 B선임.
두 사람이 다른 직원들과 섞여
자주 술자리를 가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그 시간들이
우리 조직의 상황을 공유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일했던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관심은 당연히
이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긴 기다림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A선임이 나를 불렀다.
“콤마씨. B선임이랑 일해봤잖아요. 어때요?
요즘 위에서 B선임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장 의견이 궁금해서요.”
그리고 정말 모르는 사람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전했던
B선임과의 업무 방식을.
이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소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더이상 우리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A선임의 얼굴을 보며,
그는 우리와 동고동락한 시간을 생각하기보다
B선임과의 표면적인 관계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질문을 받으며 앉아 있던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설명을 거부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 속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이미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A선임은 그 이후로도
내게 웃으며 인사했고,
친근하게 농담을 걸었다.
나도 그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발걸음은,
그의 발걸음에 발맞춰
뒤로 물러섰다.
이건 내가 먼저 선택한 이탈이 아니었다.
*다음 화에는 '미묘한 선긋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