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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던 베르사유 궁전의 기억

베르사유 궁 관람에서 남은 것은 분실된 카드뿐

by 오주황

어제 아침과 같이 오르세 미술관 쪽으로 걸었다. 미술관 근처에 위치한 지하철역으로 갔다. 파리 시내에서 시간이 꽤 걸리는 베르사유 궁전 일정에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너무 일찍 왔는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쪽에 몇 사람이 모여 있었고 불길한 예감을 안고 베르사유 궁전 쪽으로 가는 RCR C선의 운행에 대해 물었다.


오늘은 파업 날이라서 운행을 하지 않으니 역무원은 다른 방법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역에서 지하철을 타서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 적힌 종이를 건네받았다. 나는 침착하려 했지만 당황스러웠고, 오늘 일정을 다음으로 미루고 다른 곳을 갈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역무원들은 파업이 언제 끝날지 본인들도 모른다고 했고 계획한 동선이 꼬이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알려준 대로 베르사유 궁으로 출발했다.


20200913_2.jpg 관람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사람들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일찍 오길 얼마나 잘했는지 실감했다.


멀고 먼 길을 돌아서 버스에 내렸을 때 이미 나와 비슷한 사연의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면서 베르사유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베르사유 궁 관람은 매표를 하고도 줄을 서야 했다. 아직 아침인데 하루가 너무 길었다. 다행히 매표 후에 줄은 길지 않았다. 베르사유 궁을 방문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매표 후에도 줄을 서야 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침에 벌써 멘탈이 나갈 뻔했다. 한 숨 내쉬고 메신저 백에서 까르네를 확인했다. 그때 알았다. 카드가 없어졌다는걸. 주머니를 뒤져보고 가방 안을 뒤져봐도 카드는 없었다.


얼굴에 피가 돌지 않는 것 같았다. 황금빛 문 앞에 해가 쨍쨍하게 있는데 추워지는 것 같았다. 소름이 돋고 정신이 없었다. 일단 재빠르게 스마트폰으로 카드를 정지했다. 다행히 다른 사람이 카드 사용은 하지 않은것을 확인하고, 어디서 잃어버린 거지 생각하고 매표소 쪽으로 달려갔다. "엄마 빨리 다녀올 테니까 입장이 가까워지면 잠깐 기다리고 있어" 아침에 카드를 꺼낸 건 매표소 밖에 없었다. 이미 꽉 차 있는 매표소의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카드를 잃어버렸다고 매표소 직원에게 말했다. 아마 느긋한 그들과 달리 나는 초조하고 당황한 얼굴 빛이었을 것이다. 나는 짧게 한국에서 온 사람이고 카드가 무슨 색이었는지 혹시 분실물 중에 있었냐고 물었다. 키가 큰 아저씨 한 분이 나오시니 천천히 따라오라고 말했다. 분실물을 모아 놓은 곳이 있으니 거기서 한 번 찾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줄 서는 곳에 벨트 차단봉을 열더니 여기로 오라고 손짓했다. 따라가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여권을 보여줘야겠지. 카드에 사인해 놓았으니 괜찮겠지. 없다고 하면 나오는 길에 이쪽으로 한 번 더 들러봐야겠다.


나무 데스크 뒤쪽에 있는 여자분이 나와서 내 카드를 내밀었다.(예술 관련 학과에 관련해서 진학하고 있는 학생은 국제 학생증과 겸해서 해외 결제 카드를 발급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카드에 학생증 사진이 붙여 있어서 직원분이 웃으면서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여권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카드를 주고받은 우리는 웃었습니다.) 이 넓은 곳에서 내 카드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간절함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달려왔는데 바로 찾았다니.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급변하는 감정에 정신이 없었다.


20200913.jpg 뭐 하나 호화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리석과 그림의 프레임 모든 장식이 크고 강렬했다.


엄마는 얼굴빛이 어둡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얼굴이 다 펴서 찾았다고 말했고 일사천리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카드를 주더라고 말했다. 다시 안정을 되찾은 우리는 엄마의 친구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베르사유 궁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르사유 궁의 방들을 구경하는 것보다 카드가 내손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다. 카드를 잃어버리러 베르사유 궁전에 간 것 같았다.


베르사유 거울의 방에 들어갔다. 어느새 나는 설명 습관이 도저서 거울의 역사와 왜 이 방이 사치품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내부도 좋지만 정원이 정말 좋았다는 후기를 많이 봤었다. 그렇지만 시간이나 체력상 파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엄마는 고집을 부렸다. 정원을 보면 좋겠다고 했고 아니면 뒷 뜰에 가서 정원 입구 쪽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자고 했다. 나는 인상을 잔뜩 쓰고 엄마는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정원입구에 있는 사진속에 나를 보면서 후회보다 조금 더 무거운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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