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불이 난 두 쌍의 발바닥
에펠탑이 보이는 낮은 오르막에서 야바위라니 이게 무슨. 프랑스 사람들은 저걸 어디서 배운 걸까. 저 사람들이 관광객 많은 여기서 시끄럽게 뭘 하는 건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엄마와 나는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앉고 싶었고 손수건을 깔고 개 오줌 냄새가 나는 잔디 위에 앉았다. 더 멋지게 보이는 곳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사람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컵을 돌리고 있었다. 야바위는 인터내셔널 한 놀음이었구나 생각했다.
샤요궁(샤이오궁)에서 찍은 에펠탑 사진이 인생 사진이라는 소식을 듣고 목적지를 이곳으로 정했다. 인생 사진이라는 말에 엄마가 좋아했다. 어느 쪽에서 있어도 프레임에 에펠탑이 적당한 크기로 걸렸고 파리에 다녀왔다는 인증샷으로 충분히 멋졌다. 그보다 나는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좋았다.
식당을 가거나 프랑스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니하오>나 <곤니찌와>라고 인사를 받았다.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엄마가 중국사람에 가까운지 일본 사람에 가까운지를 물었고 나는 그날그날 다르다고 말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샤요 궁에 에펠탑 기념품을 고리로 걸고 다니는 젊은 친구들은 우리를 한국인으로 알아봤다. 기념품을 파는 친구가 한국말로 "싸다 싸."라고 말하면서 나에게로 올 때 조금 소름이 돋았다. 반면에 엄마는 어느 때 보다 함박웃음을 지었는데 아마도 국적을 알아봐 준 현지인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샤요궁 어느 즈음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현란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봤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춤을 추는 사람도 호흥하는 사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행복하게 춤을 췄고 자유로워 보였다. 다음 일정으로 향할 에너지를 충분히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랑스 개선문을 앞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차 들은 뱅뱅 돌고 있었고 나는 이런 여행이 지루했다. 이제 인증 사진은 그만 찍고 싶었다. 개선문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저기 올라가 볼 수도 있는데 계단이 엄청 많고 힘들다는데 가 볼래요?" 얼굴빛이 좋지 않은 나를 보고 엄마는 말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가지 말자." 나는 이제 할 일을 마친 사람처럼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나는 좀 들떠있었다. 목소리가 한 톤 올라서는 "우리 좀 걸어요. 여기서부터 숙소까지 걸어가는 건 어때요?"라고 말했고 엄마는 개선문에서 숙소까지 멀지 않았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가는 길에 샹젤리제 거리가 있으니까 거리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어요"라고 내가 말했고 엄마는 아무 의심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프랑스 개선문에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직선으로 걷는다면 45분 ~ 50분 정도가 걸린다. 우리 숙소는 루브르에서 10분 안쪽에 있는 곳이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디즈니 스토어에 들르고 사람 구경도 많이 했다. 신나서 오 샹젤리제 노래도 흥얼거렸다. 직선코스 말고 뒷골목을 걸어서 진짜 프랑스를 봐야 한다고 내가 말했고 우리는 엘리제 궁 쪽으로 신나게 걸었다. 그런데 어는 순간 길에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깃발이 꽂아진 차를 보긴 했는데 그게 다였다. 골목을 돌아가려고 할 때 멀리서 보이는 경찰이 여기는 못 온다고 다른 길로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잘 모르겠지만 정치인과 관련된 어떤 행사가 열리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우리는 이미 발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걷기만 했고 앞으로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야?"라고 엄마가 물었을 때 "엄마 우리 망한 것 같아."라고 내가 말했다. 구글 맵으로 방향을 확인하면서 가는데 멀리서 콩코르드 광장에 오빌리스크가 보였다.(콩코르드 광장 옆에 튈르리 공원이 있고 튈르리 공원 옆에 루브르 박물관이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곧 숙소에 도착할 거라고 엄마에게 알려줬다.
우리는 "소방차가 와야 한다고 발에 불이 나니까"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런 농담에도 웃음이 멈추지 않을 만큼 우리는 제정신 아니었던 동시에 긴장이 풀려 있었다. 해는 지고 있는데 콩코르드 광장만 도착하면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더 걸었다. 엄마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나는 내일 아침에 먹을 요거트를 사러 얼른 슈퍼마켓으로 갔다. 하루가 길었던 엄마는 이미 잠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