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오줌 냄새가 났지만
에제 약속대로 우리는 오전에는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고 낮잠 후에 루브르 박물관(보통은 저녁 즈음에 문을 닫지만 야간 개장하는 날이 있어서 늦게는 9시 넘게 오픈하는 날로 일정을 잡으면 빛이 들어오는 유리 피라미드를 볼 수 있습니다.)으로 가기로 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일정이었다. 그 대신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파리의 아침 거리에서는 개 오줌 냄새가 났다. 야광 조끼를 입은 청소부는 행인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본인 일에 열중했다. 오줌 냄새가 나는 거리에서 청소부 빗자루질에 물이 튀는 건 분명 좋지 않은 경험이다.
아치형 통로를 지나 걸어갔다. 오른쪽은 튈르리 공원 왼쪽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유리 피라미드가 있었다. 탁 트인 공간 위로는 망사르 지붕이 올라가 있었다. 프랑스 사람이 김밥을 먹는 걸 볼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말 프랑스에 온 것 같았다. 루브르에서 멀지 않은 오르세 미술관을 향해서 더 걸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출근하는 듯 보이는 사람이 지나갔다. "핑크색 바지를 입고 있었던 거 봤어?" 엄마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자전거 타는데 핑크색 바지를 입어서 놀란 거야?" 엄마는 사람들이 다채로운 색의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게 놀랍다고 했다. 아침에 핑크색 바지를 입은 청년을 보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물었다고 말했다. 저 사람도 아침에 바람막이를 입은 관광객은 볼지 몰랐을 거라고 내가 엄마에게 말해 줬다.
일찍 도착한 오르세 미술관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로 패키지로 온 관광객이었다. 엄마는 그 부분에서 조금 우쭐하는 듯 보였다.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자유로움을 표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반면에 나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예산부터 일정까지 모두 내 몫이었고 지정된 시간에 예약하고 도착해야 했으며 변경된 일정에 포기해야 할 것들을 고민해야 했다.
오디오 가이드는 이제 엄마의 친구가 되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홀이 보였다. 시끄러운 사람들의 말소리를 신경 쓸 겨를 없이 천장에 아치가 눈에 들어왔다. 높은 천장과 유리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웅장함과 동시에 따뜻함을 가져왔다. 조각 작품은 손에 닿을 듯하게 가까이에 있었고 책 안에서 보던 그림들은 벽에 걸려 있었다. 반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 그림은 비교적 친근하게 느껴졌다.
귀스타프 쿠르베의 <오르낭의 장례식>은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개념이었다고 교양 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보수적인 미술 역사에서는 고귀한 것을 정해진 형식에 맞춰서 그리는 것이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별하는 기준이었다. 나는 일상적인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좋았다. 행복이 상장 같은 것 일리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학교에서 주는 상장이 나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덩달아 나도 좋았던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쿠르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집중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결산받는 즐거움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즐거운 일도 중요했을 테니까.
나는 엄마와 되도록 멀리 떨어졌다. 경비원이 즐비한 이곳에서 큰일이 일어날 확률은 미미하고 닫힌 곳에서 서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충분히 그림에 집중하고 싶었다. 엄마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실에 들어섰을 때 엄마를 봤다.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고 눈은 반짝거렸다. 엄마는 내가 옆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모른 척 지나갔다.
시간상 작품이 더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엄마를 찾아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은 정말 좋았다. 현대에 가까운 근대 작품들이라서 더 집중도가 높았던 것 같기도 하다. 위층에 기념품점 앞에 문어처럼 생긴 의자가 있었다. 시계 옆 의자에 가만히 앉아 머리도 식힐 겸 시간을 보냈다. 식사시간이 가까워오자 엄마가 나를 쳐다봤다.
에스까르고와 양고기를 시켰다. 그전에 어니언 수프가 먼저 나왔다. 치즈가 두껍게 올라간 브라운 색을 띤 음식을 엄마는 다 먹었다. 나는 한두 번 끄적거렸고 엄마는 나에게 바닥을 보여줬다. 오르세 미술관과 가까운 음식점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간다던 곳에는 현지인이 더 많았다. 달팽이는 까슬까슬하게 씹혔지만 양고기는 부드러웠다. 그렇지만 추천할 정도의 음식은 아니었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남기지 않고 다 드셨고 만족스러운 식사로 기억하신 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