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기 빵은 내 입에 맞아
이 호텔의 마지막 날 조식은 못 먹을 것 같았다. 이제 파리로 넘어가니까 파리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일찍 일어난 엄마가 객실로 들어왔다. "아래에서 한국 사람 봤다."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며칠 머물지도 않았던 호텔에 벌써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조식은 어땠어?" 내가 물었다. 엄마는 역시 빵과 시리얼 모두 먹었다면서 오늘도 여행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근데 아래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키디프? 거길 간다는데 거기는 뭐하는데야?"라고 물었다.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넘어가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캐리어와 배낭을 정리하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키디프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했다. "거기도 멋있다고 들었어, 우리 다음에 가자."라고 말했다. 나는 가볍게 말했고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여권들이 메신저 백 안에 있는지 확인했다.
지하철로 가는 길도 험난했다. 핌리코 역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익숙하게 왔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작은 빵집이 있었고 카페도 열려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계속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뒤를 돌아봤다. 엄마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저 뒤에 엄마가 생선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장이 열리는 것 같이 작은 마켓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목적지가 있었던 나는 내 길을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야 엄마가 따라오지 않은 걸 알았다. 나는 다시 돌아갔다. 화가 많이 났었다. 기차를 타러 가야 하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길을 잃으면 어쩌려고 이러냐고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
어젯밤에는 공사 중인 빅벤을 봐도 기분이 좋았다. 런던아이도 멈춰있었는데 찍은 사진은 죄다 웃는 사진이었다. 춥고 바람이 불고 따뜻한 커피도 다 식었지만 행복했었다. 템즈강 주변으로 알전구들이 빛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주변에는 관광객이 드물었다. 거리는 어두웠지만 우리는 둘 다 표정이 밝았었다.
킹스크로스 역에서 내려서 복잡한 길을 잘 찾았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간단하게 요기할 시간이 생겼다. 남은 파운드를 다 사용하고 갈 생각으로 발이 너무 시렸던 나는 양말을 샀고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파리에서 체인점처럼 운영되는 빵집이 영국에도 있었다. 우리는 샌드위치와 타르트, 음료를 사고 동전까지 탈탈 털어서 파운드를 없앴다.
샌드위치가 배가 들어가니 기분이 나아졌다. 긴장도 조금 풀렸다. "엄마, 근데 예전에 내가 밤빵 먹고 싶은데 엄마가 식빵 사 와서 화냈잖아." 엄마가 날 쳐다봤다. "별일 아닌데 내가 잘 못한 것 같아. 미안했어요." 나는 미안함을 담아서 덤덤하게 말했다. 엄마가 나를 보면서 끄덕였다. 엄마의 표정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사실은 작은 마켓에 나도 눈이 갔다. 모두 다 흥미를 끌었다. 생선이나 유제품을 어디서 유통해서 파는 걸까 궁금했다. 이걸 사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 보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생선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함께 경험하는 것이었다. 작은 책임에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