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진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다짐하지만 지켜진 적은 많지 않다. 지나가는 시간을 잡고 싶은 밤에는 눈을 뜨고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선명해지는 것들이 마음속에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부푼 것들은 대체로 바람이 빠지면 볼품이 없다. 몸집을 키운 기대는 대체로 오진우가 먹은 마음에 질문을 한다. 이것이 바란 것의 형상인지를 묻는다. 뒤척였던 밤들이 그리고 다짐과는 달랐던 아침들이 오진우에게 현실감각을 일깨운다. 오진우는 질문의 답을 찾으면 비로소 자신의 바람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한 것들과 갖게 된 것들을 대하는 태도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여행 후에 오진우에게 온 것들 중에는 국민건강 보험이 지역가입자로 돌아간다는 우편이 있었다. 그 외에도 국민연금이 있었고 퇴사 관련된 것 중에는 실업급여도 있었다. 회사에서 나올 때 오진우는 퇴사 사유를 권고 퇴사로 채우고 사직서를 김 대표에게 직접 냈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 오진우는 구직신청을 하고 수급 설명회를 앱으로 듣는다. 천천히 옷을 챙겨 입고 실업인정 신청을 하기 위해 공덕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탄다. 오전 지하철에 사람은 많지 않다. 오진우 눈에 띄는 것은 연령대가 조금 높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오진우는 공덕역 근처에 위치한 고용센터로 걸어간다. 동네 주위를 산책할 때와는 다르게 묘하게 긴장된다. 고용센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는 직장인들이 타고 있다. 오진우는 편한 차림으로 온 것을 순간 후회했다. 센터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오진우는 고용센터에 번호표를 뽑으면서 더 이상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직장인과 함께 있을 때 그 경계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2주 후 방문을 안내하는 종이를 걷네 받은 오진우가 고용센터 계단을 통해 내려온다. 한강이 보이고 다리 쪽에서 자전거 몇 대가 오진우 쪽으로 온다. 다시 한산한 지하철에 타고 싶지 않아서 오진우는 한강을 따라 걷는다. 한강 가까이에서 걷기 시작할 때 정수진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오진우 씨 어디십니까? 정수진이 오진우에게 농담기가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공덕이요. 평소보다 더 차분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오진우가 대답한다.
거기 맛집 있어?
실업급여 신청하러.
오늘 저녁 먹을래?
글쎄.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던 오진우가 대답한다.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자.
가지 덮밥 정식으로 할게.
알겠어.
오진우는 정수진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쳐져 있는 느낌이 아니라 아주 가까웠던 사람이 아주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퇴사를 하기 전에는 이런 기분을 알지 못했었다. 오진우는 아무것도 주변에 있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자아 둘만 남아 있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속감이라고 하는 곳에 숨지 못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두려움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일단 오진우는 공덕에서 절두산 성지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는다. 한 사람이 공원 운동기구에 몸을 맡기는 것을 보고 한강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시간에 운동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오진우가 잠시 생각한다. 반대편에서 젊은 커플이 조깅을 하면서 지나간다. 조깅하는 사람을 보자 오진우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나도 조깅을 해볼까. 오진우가 잠깐 멈춰서 지나간 커플의 뒷모습을 본다.
정수진과 오진우가 가지 덮밥을 맛있게 먹는다. 가지 덮밥은 오진우가 종종 찾아서 먹는 음식 중에 하나다. 두 사람은 소담스러운 튀김을 먹고 마지막에는 푸딩으로 입가심을 한다. 오진우는 오전에 찍었던 한강 사진을 정수진에게 보여준다. 정수진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오진우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진우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지만 새삼스럽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정수진에게 말한다. 근황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정수진의 회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흐른다.
A회사 여자 화장실 몰래카메라 사건이 있었던 거 혹시 알아? 정수진이 오진우에게 말한다.
나도 들었어. 퇴사 전에 선배들 만나는 자리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다 먹은 푸딩을 보면서 오진우가 대답한다.
대표가 한 짓이었대. 부연 설명도 없이 정수진이 말한다.
뭐? 자주 잡지에 인터뷰하는 그 자동차 수집한다는 대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진우가 정수진을 보고 있다.
그래서 여자 사원들 거의 퇴사했다고 전 직원한테 들었어. 허탈한 표정으로 정수진이 말한다.
… 전 회사 팀장이 거기 회사 추천해 주겠다고 퇴사하고 전화 왔었어. 오진우는 말하면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와. 진짜 너네 팀장도 대단한 사람이다. 정수진은 표정이 더 어두워져서 말한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도 옆에 팀장이 신입 추행으로 해임됐어. 어이없는 건 아무 일없이 묻으려고 하다가 누가 커뮤니티에 올리니까 그제야 해임시키더라고. 그 팀장 한 달이나 출근했어.
오진우는 확고한 표정으로 천천히 정수진에게 말한다. 예전에는 내가 당한 일이 아니니까 안타깝다 생각만 했는데 요즘에는 나도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아. 이제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어.
우리 회사 신입이 나보다 먼저 그 일을 알고 있더라. 나도 신입한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한동안은 어쩔 줄 모르겠더라...
회사에서 순응하는 삶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피할 곳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오진우는 개인의 삶과 회사의 이익이 비슷한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무조건과 환경이 부의 축적처럼 극단으로 가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워라밸러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대표에게 직접 말하기도 했다. 피상적이고 수동적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자신의 일이 되었으므로 오진우도 변하고 있었다. 여행 후에 오진우에게 온 것은 고지서를 포함한 우편물과 조깅을 하면서 사는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