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취미를 갖고 싶다.
초등학교 때는 서예, 바이올린, 피아노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다.
서예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6학년 때까지 배웠다.
서예대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최우수상도 받고 금상도 받고 동상도 받고,
매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때 꿈은 '서예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도 '서예가'가 유망직종은 아니었지만
마냥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 서예를 꾸준히 배웠더라면
취미로 캘리그래피 강습 쯤은 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님 적어도 우리 집의 가훈쯤은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피아노도 초등학교 때 체르니 40번까지 쳤다.
아주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지만
남들만큼 피아노를 쳤던 것 같다.
요즘에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보면 마냥 부럽다.
계속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면 나도 지금 이루마의 Kiss the rain 같은 곡은
식은 죽 먹기로 칠 수 있었을 텐데
중학교 이후로 피아노와 작별하면서
지금은 낮은음 자리표와 높은 음 자리표를 동시에 보며
피아노를 친다는 게 상상이 안된다.
두 손가락을 이용해서 젓가락 행진곡이 겨우 가능한 정도다.
그 어느 날 TV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너무 멋지게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한테 바이올린 배우고 싶다고 졸라서
3/4 바이올린을 사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바이올린도 배웠다.
중학교 때는 학교 현악부에 들어서
3년 동안 합주대회도 나가고 방학 때는 합숙도 하고,
바이올린을 켤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 자매결연 맺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권한이 생겼고,
그때 당시 돈으로 6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내고 중국 여행도 다녀왔다.
중국 학생들 보는 앞에서 금귤금귤 거리며 합주도 했다.
매 번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시간이 되면
현악부는 미리 악기와 악보대, 의자를 가지고
강당으로 집합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교가 등을 연주했다.
시대회, 도대회도 참가해서
역시 우수한 성적도 많이 거두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지휘자 선생님께 많이 혼도 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았던 추억들이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부터는 학업에 매진하라며
예체능을 하는 클럽에는 절대 가입하지 말라고 하셨다.
난 현악부에 들어 합주도 하고 싶었고,
밴드에 가입해 드럼과 기타를 너무나 배우고 싶었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그 탓을 할 것 같아
고등학교 때부터 예체능에 손을 뗐다.
예체능을 안 했다고 내가 그 시간에 공부해서 전교 1등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나 모르겠다.
악기를 손에서 놓지 말걸.. 후회가 된다.
대학교 때도
예체능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그런 동아리는 맨날 술만 마시고, 공부도 못한다는
언니의 잔소리에
난 또 가입을 못했다.
그렇게 난 서예도 못하고,
피아노로 젓가락 행진곡 정도를 칠 수 있으며,
바이올린도 초보 실력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배움에 있어서 두려움도 없었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무엇을 배우기 위해 돈을 낸다고 생각하니 좀 아깝다.
회사에서 잠시 운영했던 기타 동아리에서
기타를 배워 코드를 보는 법은 알지만
역시 독학으로 하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고 제자리다.
20대 중반에 몇 년간
성당에서 하는 청년성가대에 가입해서
노래를 불렀었다.
그때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매주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취미생활이 생겨서 좋았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몸이 힘들다는 핑계로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거나,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어렸을 때처럼 서예도 다시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바이올린도 배우고,
기타도 배우고, 발레도 배워보고 싶고, 미술도 배우고 싶다.
하지만 항상 '그러고 싶다.'로 끝이 난다.
나이 30살.
그 무엇이든 배우기에 늦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15년간 잊어버렸던 내 예체능 끼를 되찾고 싶다.
그 어느 날 내가 배운 악기로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