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이야기 #3. 메피폼

살 색이니까 괜찮아

by 반백이

내 나이 30살의 설날.

"목이 좀 부은 것 같아. 병원에 가서 갑상선 초음파 찍어봐."

슈바이처에 빙의된 것 같은 엄마의 진단.

설마 설마 했지만, 검진결과 갑상선암.


거북이암이다, 평생 수술 안해도 살 수 있다 라는 하얀 거짓말에 속아

생각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인 암투병.


3개월동안 병가를 내고 난 후

수술을 하고, 요오드치료를 하고.....

그 동안 자유로운 몸으로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30년간의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20150326_151104.jpg



수술과, 요오드 치료를 받으며

신촌 세브란스 병실창문에서 본 바깥세상의 풍경은

지금껏 내가 아무 의미없이 스쳐지나갔던 그 많은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쉼없이 지나가는 경춘선,

하하호호 떠들어 대는 학생들,

모두 내 것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서 두려웠다.


치료를 끝내고 나가면

'내 이 두팔로 거리의 공기를 휘저으며 달려갈테다.

소중한 하루하루 감사해하며 살아갈거다.'

다짐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끝나

회사에 복귀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하다.

목 아래 쪽에 스마일 표시로 난 상처만 빼면....


처음에는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해 더운 여름에도 목이 올라오는 티셔츠만 입었다.

남들에게 내 치부를 보이는 것만 같아 가리고 싶었다.

상처위치가 목 아래쪽이라

행여나 내 사정을 모르는 타인이 오해하는 게 싫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내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환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상처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힘든 기간을 잘 이겨낸..

나에게는 소중한 것임을.. 깨닫고 난후부터

새살 솔솔 돋게 한다는 살색 메피폼으로

상처를 붙이고

당당히 출근한다.


이제는 목이 파인 티셔츠도, 원피스도 마음껏 입는다.

하루 이틀 입다보니 신경쓰이지 않기 시작했다.

다시 회사에 복귀한 지 2달째..

세브란스 병실에서 느꼈던 삶에 대한 소중함도

언제그랬냐는 듯이 사라질 듯 하다.


그럴때면

거울을 가만히 바라본다.

살색 메피폼이 붙어있는 내 목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의 상처를 본다.

상처가 웃고 있다.

나도 따라 웃는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물과 이야기 #2. 성 베드로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