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이야기 #7. 립스틱

나이 30. 빨간 립스틱

by 반백이

어린 시절

내 기준에 여자 어른들은 모두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그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잠깐 외출한 사이

화장대에 있는 립스틱을 몰래 발라보곤 했다.

그럼 정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이 20살.

립스틱을 마음껏 발라도 되는 나이지만

이상하게도

립스틱이 싫었다.

립스틱을 바르면 어른이 될 것만 같았다.


주위 친구들이 립스틱 색깔 비교하고

어떤 립스틱이 발색력이 좋은지

어떤 립스틱이 내 얼굴색에 맞는지

이야기꽃을 피울 때도

난 정말 관심이 없었다.

내 핸드백에는 챕스틱이 전부였다.



나이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며,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가족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그런 존재였다.

정신적인 어른이 되지 못했다.

마냥 부모님의 철없는 둘째 딸이고 싶었다.



그렇게 30살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독립했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누군가를 부양할 수 있는 책임감도 생기고,,


그래서일까..

30살이 된 올해부터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sticker sticker

립스틱 초년생이라

바르는 실력이 형편없다.

회사 동료의 말로는

엄마 화장대에서 몰래 립스틱 훔쳐 바르고 온 사람 같단다.


나이 30.

빨간 립스틱 곱게 바른

진짜 어른이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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