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루 일지
언젠가 엄마가 말했다.
딸, 엄마는 돈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유산으로 많이 못 줄 것 같아.
너한테 빚이나 안 물려주면 다행일 거야. 근데 딸래미. 엄마는, 너한테 물질적인 유산 말고, 정신적인 유산을 줄 거야. 엄마가 여태껏 공부했던 모든 걸 줄 거야.
우리 엄마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내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다. 엄마는 그날로부터 내게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 슬픔을 잘 겪어내는
법,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
나는 오랜 시간 나를 사랑하지 못한 채 지내왔고, 요가를 접하며 아주 조금씩 나와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난 아직도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얼굴이, 내 성격이, 내 게으름이 싫다.
그걸 알고 있는 우리 엄마는, 그래서인지 때때로 내 눈을 아주 오랜 시간 마주 보며 말한다.
엄마는 널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넌 내 목숨보다 귀한 딸이야.
이 세상에서 널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네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은 엄마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 금쪽같이 귀한 딸.
네 이야기만 꺼내면 엄마가 칭찬을 받아.
엄마 생에 너만큼 자랑스러운 건 없어.
네가 명문대가 아니어도, 연예인만큼 예쁘지 않아도 돼. 그런 거 다 부질없어.
그렇게 잘난 사람들, 엄마가 만나보니 우리 딸이 최고야.
넌 엄마의 자랑이야…
너도 널 함부로 하지 마.
내 자랑을, 내 사랑스러운 딸 상처 주면 너라도 엄만 용서 안 할 거야.
…
나는 나 자신이 낮은 것만 같은데. 나는 이따금 내가 우주의 티끌처럼 작고 한번 쓰고 버린 플라스틱처럼 망망대해를 떠도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데, 엄마는 날 자랑스럽다고 한다.
나라도 엄마의 딸인 나를 상처 입히지 말라고 한다.
이런 말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으니 진짜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 흔들려도 내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날 홀대할 때면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서도, 그 사람의 말에 은연 중 조금은 동의하면서도 잊지 않으려 중얼거린다.
나보다 날 더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날 너무 사랑해서 자기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 난 소중한 사람이야.
엄마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기름에 데여 곳곳에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상처들이 가득하지만 엄마는 단단하고 고요하게 날 지지한다.
때때로 엄마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내가 엄마의 자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손을 잡고 요가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무도 거대하고 따뜻한 사랑은 나를 용기 있게 만든다. 움츠리기보다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세상에 한 발 디딜 수 있는 모험심을 심어준다.
실패 앞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끈기를 주며, 누군가의 호의와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엄마에게 이토록 사랑을 받아서, 나는 내가 만나는 회원님들에게 사랑을 마음껏 주게 된다. 사랑을 하면 더 큰 사랑이 되돌아 옴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우산을 잃어버려 실망한 일을 기억하고 스승의 날에 우산을 선물해 준 모녀 회원님의 사랑을, 나를 보고 요가 강사를 꿈꾸게 되었다는 회원님의 반짝이는 눈을, 기꺼이 내 요가 공연을 보러 2시간 거리를 와주시는 회원님의 애정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요가를 가르치고 있지만 한 시간의 수업 속에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곧 날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 사람은 머지않아 나와 함께하는 요가를 사랑하게 될 테니까.
다정함만이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만이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좌절하더라도 사랑받은 사람은 제대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씨앗을 뿌리고 싶다.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부르고, 함께 내가 사랑하는 요가를 하다 보면 그것이 움틀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보여줄 결실을 기대한다.
우리 엄마가 내게 기대하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