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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n 22. 2023

멈춤의 순간

후회로 이끄는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아닌 지금의 순간


요가의 호흡에는 꿈바카, 라고 하는 잠시 멈춤의 순간이 존재한다.


호흡을 들이 마시고 난 후 멈추는 것을 안따르 쿰바카,

호흡을 내쉰 후 멈추는 것을 바히르 쿰바카라고 한다.


사실 강사 과정 들을 때 이런 프리카(들숨), 레차카(날숨)으로 구령하는 하타 요가원이 있다-,라고 듣긴 했으나 까팔라바티 호흡을 수련할 때를 제외하곤 들어보지 못했다.(아쉬탕가에선 안 쓰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숨이 막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몸에 열이 많아서인지 성격이 급해서인지…

그래서 호흡 수련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 하타 요가 수련을 시작하면서 호흡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안타르 쿰바카는 생명력을,

바히르 쿰바카는 참을성을 준다고 한다.


호흡이 막히면 우리는 성급해진다. 성급해진 마음은 욕심을 내게 만든다.


다음에 숨 쉴 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더 많이, 강하게 마쉬거나 내쉬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흥분하거나 무서울 때에도 우리는 호흡을 극도로 소량만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차분히 앉아 들숨을 마시고 잠시 멈추고, 내쉬고, 잠시 멈추는

행위는 우리 스스로의 욕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 같다.


잘해야지, 더 많이 참아야지, 옆 사람 보다 더 오래 마시고 참을 거야, 하는 마음들을 내려놓게 만든다.


터질 때까지 들이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편안할 만큼만, 폐가 쪼그라들 만큼 내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오로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의식을 두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욕심이 지금보다 많았다.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을 받고 싶었다.


인정을 못 받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나의 쓸모를 찾기가 힘들어서.


최근에도 그런 감정이 때때로 올라오는데, 그런 것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많은 책이나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찾는 답은,


일단 있는 것에 감사하라, 는 것이다.


나의 몸에 대해 불만을 품고, 나의 몸이 끔찍이 싫다면,

부정적인 것에 맞춘 초점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내 몸은 왜 이리 뻣뻣해?

왜 이리 뚱뚱할까?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않아?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힐난하기보다는


아 오늘도 나는 내 몸을 움직일 수 있구나

오늘도 내 몸은 건강하구나

요가를 할 수 있는 몸을 가진 것이 감사하다!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차피 이 세상은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있다.

내가 죽는다면 ‘세상’은 소멸한다.


세상을 바꿀 필요가 없다. 그저 내 머릿속을 바꾸면 내 삶은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갈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감사하지 않더라도 내 몸에 대해 감사하는 연습, 나를 아끼는 연습을 쌓아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 쿰박 수련을 하며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을 통제받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그런 통제에서 벗어나 자연 호흡으로 돌아가는 순간 굉장한 편안함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것.

통제받지 않고 자유한다는 것.


누군가는 산소마스크로 인위적으로 호흡을 공급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대기의 오염으로 마스크를

벗을 수 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서 호흡하고 있다.


그것이 문득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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