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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16. 2023

선생님, 요가는 얼마나 해야 편해지나요?

초기의 고통

“선생님, 요가는 얼마나 해야 편해질까요?”


신규 회원님들이 이따금 나를 붙잡고 묻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회원님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다, 고 말씀드린다.

나는 모든 처음은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엔 항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항상성은 이름에서부터 보이듯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성질’을 말한다.


몸무게, 체온 같은 것들. 웃기는 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어져 있듯 정신 또한 항상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의 본능은 ‘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관련이 없다. 다만 그것이 내게 ‘익숙’한 지, 익숙하지 않은지로 판가름될 뿐이다.


내가 처음 요가를 시작할 때 요가원으로 가는 그 10분이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을 땐(총 42일) 첫 7일이 지옥 같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내가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내 글이 끔찍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했다. 계속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마음으로 그냥 계속 요가를 했고, 지옥을 42일 걸었고, 끔찍함을 참아내며 그냥 쓰다 보니 ‘익숙’해졌다. 어제 했던 익숙한 일을 오늘 또 하는 것은 두렵고 귀찮지 않아 졌다.


생각해 보면 낯설기 때문에 두렵고 낯설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들이 많다. 굳어 있는 하체와 말려있는 상체를 하루아침에 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매일 하다 보면 말린 어깨가 조금씩 펴지고, 굳어있던 다리 근육은 조금씩 유연함을 되찾는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동작들이 눈을 감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익숙함으로 체험된다면, 나는 이제 그 일이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회원님들에게 그런 초기에 오는 고통을 ‘초기의 고통’이라고 말씀드리는데 이는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돈은 쉽게 빠져나간다. 쉬운 노력을 들인 결과는 쉽게 잊히지만 발에 물집이 터질 정도로 매일 다섯 시간씩 걸어 800km를 완주해 낸 뒤 얻어낸 결과물은 평생 잊히지 않을 자랑거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회원님들께 지금의 고통을 충분히 즐기시라고 말씀드린다. 지금 발 뒤꿈치가 안 닿는 고통, 지금 허벅지가 땅기는 아픔. 한 달 뒤면 다시 느끼고 싶어도 느끼지 못할 고통이니까.

그 고통을 한 달 내내 느끼다가, 어느 순간 고통스럽지 않음을 깨달을 때. 뒤꿈치가 사뿐히 매트 바닥을 짓누르고 있을 때의 행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고통 뒤엔 성장이 온다. 모든 고통이 성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경험은 날 성장하게 만든다.


나는 요가를 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력을 얻었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뒤까지 고통스러울 리 없음을 이미 수백 번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가 매트는 작은 세상이다. 요가 매트 위에서의 감내는 내 삶으로 까지 이어진다. 필라테스 교육이 싫고, 괴로워 도망가고 싶고 영어가 지긋지긋해도 그래도 그냥 버텨보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요가는 육체 수련이지만, 마음까지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모든 고통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성취를 가져올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나는 그래서 회원님들께 최대한 피드백을 많이 해드리려 노력한다. 특히 신규 회원님들에게.


지금 당신은 이 매트 위에 선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안다고.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가고 싶은 항상성의 마음을 깨고 나 자신에게 저항하며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해 준다.


그리고 회원님의 현재와 성장에 대해 꼼꼼히 말해준다. 저번주와 처음엔 이 자세가 힘겨워 보였는데, 지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고. 그럼 그 회원님은 스스로의 항상성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삶에 요가를 넣는 것이다.


항상성을 깨는 것은 힘들다. 인간의 본능이란 변화하기보단 고착되어 고여있고 싶어 한다. 변화 보단 익숙 힘을 편안해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와 공부, 자기 계발, 습관 형성이 힘든 이유가 모두 이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의 고통을 여러 번 시도해 보고, 그것을 이겨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고통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용감해지고, 현명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아 내가 초기의 고통을 겪고 있구나’ 하고 깨닫고, 지금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충분히 스스로를 위로한다. 맞아, 지금 나는 힘들어. 하고.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루에 딱 한 발 씩만 앞으로 전진한다.


나는 지금 힘들지만, 그래도 난 할 수 있어. 조금씩 해내면, 내년의 나는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 하고.


그래서 난 모든 초심자들을 응원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존재하니까. 그리고 그 처음에 혼자 들어가는 것과 날 응원해 주는 지도자와 함께 가는 것은 조금 다르다.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지도자와 비난하고 실패를 부각하는 지도자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지지해 주려 노력한다. 그들이 요가를 나만큼 재밌어하길 바란다. 그들이 일 년 후엔 꼭 나처럼 요가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초기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이겨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당신이 그 고통을 이겨낼 것임을.

나는 항상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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