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몸을 웅크린 산책은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도시는 몇년째 건설중이다. 새로 길이 나고 개천 주변으로 산책로와 공원이 조성됐고 아파트가 올랐다. 날이 풀리자 대형 크레인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레미콘 트럭이 분주히 오갔다. 파헤쳐진 땅과 개천 사이로 여전히 개와 사람, 자전거와 지팡이가 오고 갔다. 논두렁과 비닐하우스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남아있는 물길의 위치로 짐작할 뿐이다. 이미 덕계역 주변으로는 수십층 높이의 아파트가 들어섰고 주변으로 상가가 들어섰다. 거리엔 젊은 가족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병원과 식당과 카페가 많아졌다. 생활이 조금 편리해졌다.
집 주변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을 때면 매번 보는 익숙한 풍경을 마주한다. 아파트와 크레인들이 먼저 눈이 들어온다. 산책을 한다 해도 방향과 경로를 정해야 한다. 오늘은 덕정역 방향으로 걷기로 한다. 덕정역 인근에는 덕정도서관이 있다. 읽을 만한 책이 있을 지 둘러보고 오기로 한다. 덕정역 방향으로 새로 난 도로는 아직 차가 다니지 않는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편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아직 건설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넓은 도로 한 가운데를 걸을 때 묘한 후련함을 느낀다. 어떤 통제에서 벗어날 때. 방학의 첫 날, 전역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부대 밖으로 나섰을 때, 명동성당에서 종로 사거리로 가두행진을 했을 때.
겨울내내 달리기를 멈췄다. 지난 가을까지는 매 주 두세번씩 달리기를 했지만 추워지면서 그만두었다. 달리기를 시작해야지. 달리지 않으면 숨이 잦아들 것 같아. 결국에는 숨이 멎을 것 같아. 다행히 태양의 온기가 등을 데우고 바람은 목덜미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주인을 멀찌감치 뒤따르는 강아지는 아직 외투를 입었다. 나도 외투를 벗어 버리기엔 아직 겁이나서 겉잠바 안으로 조끼를 끼워 입었다. 산길엔 얼음이 녹아 질척이겠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이 즈음, 올 해도 사순절을 걷는 경건한 이들과 함께, 조끼를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며 열흘동안 걸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