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2
다시 동물원에 왔다. 생각보다 기온이 낮아 대부분의 동물들은 실내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미어캣과 바바라양 몇 마리가 나와 볕을 쪼이거나 풀을 뜯고 있었다. 실내에서 촬영할 생각으로 동양관으로 향하다 우렁차게 짖는 어떤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물범 몇 마리가 밖에 나와 볕을 쬐거나 물속을 이리저리 오갔다.
이들은 더이상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이 나를 향한다 해도 더이상 그 눈 너머에는 나라는 대상은 없다. 너무 많은 관람객의 시선들, 다가가거나 피할 수 없는 시선은 대상이 없는 시선이다. 저들의 시선에 나는 삭제된 존재라는 것을 감지하고, 어떤 무력감을 느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또는 먹이가 될만한 그 어떤 존재도 아니다. 그들에겐 사육사란 존재가 있다. 바바라양에게는 옆에 잠깐 내려 앉은 한마리 까치가 더 흥미롭다.
물범은 물 밖에서 자신의 몸을 틀거나 이동할 때 온 몸을 튕겨내며 움직인다. 그들의 발은 물 밖에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 아주 힘겨워 보인다. 물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놀라운 능력이 드러난다.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날렵하게 방향을 틀며 움직인다. 이런 날 발가벗어 춥지 않은가? 사람이 생각한다. 인간이 물범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실내에서 관람할 수 있는 동양관은 유인원, 악어, 뱀 등이 합사되어 있다. 관객이 없어서인 것인지 유인원들은 조용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유인원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버텨야 했었다. 이들은 움직임이 많고 힘도 센 만큼 철창도 두껍고 촘촘했다. 사람과 닮은 점이 많아 섯불리 감정이입이 될 수도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이런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의 관점으로 드라마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울부짓음이 갇혀있는 고통의 비명이라고 해석해선 안된다. 인간이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인간 윤리의 문제이다.
인간 윤리를 넘어 동물에 대하여 더 잘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로 되돌아온다. 동물들이 살고 있는 생각 이전의 세계, 이성 이전의 세계, 다양성의 세계, 삶과 죽음 너머의 세계, 나 없음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