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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사진방 Nov 09. 2023

핑크뮬리 그리고 천일홍

사진과 산책

    2016년 가을, 강화에서 추석 성묘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양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예상외로 길이 잘 뚫려 집에서 가까운 나리공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잘 아는 길이라 여겼는지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가리키신다. 아버지가 가리킨 방향 대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로 접어들자 짜증을 내신다. 나도 뒷목이 뻣뻣해진다.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은 불안하다. 내 몸 어딘가에 있을 분노를 아버지가 터트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것은 어떤 말 한마디, 단발적임 성냄, 또는 작은 접촉일 수도 있다. 처음 가본 나리공원엔 핑크뮬리가 열을 지어 피어있었다. 

  2020년, 간선도로를 달리며 보았던 나리공원에는 여전히 조성된 핑크뮬리 군락이 보였지만 한쪽 면은 이미 갈아엎은 뒤였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2023년 가을, 코로나 감염으로 한동안 외출을 못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나리공원을 다시 찾았다. 전염병의 기세는 껵였고 핑크뮬리는 유해종으로 알려져 천일홍으로 대체되었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남편을 여의였고 노쇄하여 오래 걷기 힘들어하신다. 한쪽에는 맨드라미가 피어있다. 맨드라미란 이름은 曼陀羅華’(Mandarava)라는 산스크리트어를 서구인들이 부르며 정해졌다 한다. 우리말로 부른다면 만다라꽃 정도 될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만다라꽃은 연꽃을 뜻한다.  만트라가 소리를 통한 깨달음의로의 길이라면 만다라는 보는 것을 통한 깨달음의 길일까? 시각의 인연에 마음을 맡기고 그 길을 색과 선과 면으로 따르는 것, 그로써 투명해지는 마음에 닿는 것이 만다라를 그리는 것인가? 사진의 만다라는 어떤 것일까? 시선의 인연에 따라 마음을 맡기고 대상과 빛에 따르는 것일까? 그렇게 하면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낼까? 내가 세상이 되는 것일까?  

   인위적으로 조성된 경관은 어느 정도의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왠지 그 볼거리란 것이 또 다른 계발계획이나 지자체장의 변덕에 따라 사리질 만한 시한부 볼거리다. 어쨌든 나리공원은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고 배경이 되어준다. 도열한 천일홍은 어머니의 배경이 되어준다. 갓 스물이 넘어 보이는 두 연인이 이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고 있다. 중년의 연인도 자신을 꽃으로 빙의하고, 카메라를 잡은 남자는 연인을 그림으로 둔갑시킬 마술에 여념이 없다. 이 흐드러진 꽃밭은 오히려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만다라가 완성되면 바람에 사라지듯이 꽃이 만개하면 곧 시들어버린다. 만다라를 완성해 가는 모든 순간이 고귀하듯이 꽃길을 찾아온 연인들, 어머니와 아들의 그리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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