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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나를 이해하는 밤

그리고 지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by 오렌지

어떤 날은 일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만 빙글빙글 맴돌 뿐, 손끝은 한없이 굼떠진다. 결과물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일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물론 그 사이에 빨리 끝내는 일도 있을 텐데, 잘 안 풀리는 것들에만 눈이 가다 보니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착각이 더해지는 것 같다.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할 피드백을 작성하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자료에 근거해서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개인적인 의견을 늘어놓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

‘나는 왜 이렇게 뭐든 시간이 걸리는 거지?’

‘익숙해지는 데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


하루 종일 노트북과 씨름을 하다가 밤이 깊어가는 걸 깨달았다. 다 마무리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데도 백일 글쓰기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자정을 1시간 30분 남겨둔 지금, 나는 또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다.


어쨌든 글을 쓰다 보면 뭔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 하루를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으니까.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가?’

‘이 밤이 되도록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문득, 이렇게 묻고 있는 내 모습조차도 흥미롭다.


아무 생각 없이 신경질만 잔뜩 난 채 잠들었다면, 오늘은 그저 ‘짜증스러운 하루’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글을 남길 수 있으니, 느린 나 자신을 이해하고,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하루를 연주하듯 정리하다 보니, 비로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조급해지는 대신, 나는 나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느린 나를 인정하고, 어느 순간 속도를 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기대해 본다.

그리고 지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아하, 그래서 글쓰기가 하루 중 가장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구나.


#글쓰기 #위로 #위안 #하루정리 #내속도 #나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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