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파인애플도, 지나치게 익으면 곤란하다
파인애플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온라인 장바구니에 들어가는 기본 단위가 ‘통째로 네 개’가 된 지는 오래다. 파인애플을 이렇게 주문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적당히 숙성된 파인애플을 내 손으로 직접 손질해 먹는 건 나만의 달콤한 의식 같은 거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기대 가득 열어본 배송 박스 속에는 뜻밖의 ‘환자’들이 있었다. 네 개 중 두 개의 파인애플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아마 열대과일계의 중환자실로 보내야 할 수준이라고나 할까. 구매처에 연락했더니, 다시 네 개를 더 보내줬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몰라하는 사이, 나는 순식간에 여덟 개의 파인애플을 거느린 ‘파인애플 부자’가 되고 말았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새로 온 녀석들이 모두 과숙(過熟) 상태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잘 익다 못해 폭발 직전의 파인애플들. 조금이라도 늦으면 전부 발효될 기세였다. 나의 평화롭던 주말은 갑자기 ‘파인애플 손질 대소동’으로 변해버렸다. 파인애플 네 개를 줄지어 놓고 혼자 칼질을 하는 모습이란... 마치 강제 노동 현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웃지 못할 진짜 비극은 따로 있었다. 이 긴박한 칼질 마라톤은 내 오른쪽 어깨에 최후의 타격을 가했다. 물론 파인애플만 탓하기엔 억울한 측면도 있다.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피로와 스트레스가 파인애플 칼질을 계기로 폭발했을 뿐이니.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날의 과도한 열정적인 커팅이 내 몸에 빨간 불을 제대로 켰다는 사실이다.
그 후 며칠 동안 내 어깨는 삐걱대며 고통을 호소했다. 일상적인 움직임조차 어렵고, 밤잠은 설쳤다. 그 와중에 때마침 영어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시험을 포기하기란 늘 어려운 선택이지만, 나는 아픈 몸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심은 내 삶에서 손꼽을 만큼 현명한 결정이었다.
만약 통증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시험을 강행했다면, 중간에 답안지를 던지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겪었을 스트레스와 고통은 더 큰 짜증과 후회로 나를 몰아붙였을 게 분명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원칙 하나가 있다.
"때가 아니면 미련 없이 놓아주는 것."
좋은 기회든 중요한 일이든, 소중한 사람이든, 때로는 시험 같은 것이든 말이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과감히 멈추는 용기도 꼭 필요하다는 걸 이번 일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타이밍을 놓쳐 낭패를 본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깨 통증은 내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그동안 난 내 오른팔과 어깨를, 더 나아가 내 자신을 얼마나 혹사시켰던가. 늘 말로는 "쉬어가자"고 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던 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이번 고통 덕분에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때가 아니라면 내려놓고, 다음을 기다리는 용기가 나에게도 있음을 알았고, 통증의 원인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더 빠르게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지혜도 배웠다. 언젠가 내가 겪은 이 경험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작지만 분명한 도움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무리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굳게 마음먹었다. 물론 늘 반복해온 다짐이긴 하지만, 이번 파인애플의 역습만큼 확실한 경고와 교훈은 없었다.
역시 욕심도, 파인애플도, 적당히 익었을 때 가장 달콤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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