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다시 나아가기 위한 쉼표

일정을 미루고 나서야 깨닫게 된 마음의 여백

by 오렌지

정해진 일정을 미뤄야 하는 순간이 있다. 예상치 못한 몸의 신호가 일정을 바꿔 놓으면, 때로는 좌절스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 작년 3월 초, 갑자기 오른쪽 눈의 망막박리 수술을 하게 되어 모든 일정을 급하게 연기해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나마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한 달 후 다시 대면 일정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급작스러운 변화는 언제나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올해 3월 지금, 다행히 개인 일정 하나만 미루는 것이라 조금 낫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내일 아침 8시, 오랜만에 영어 시험을 보러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월요일부터 시작된 어깨 통증이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두 시간 넘게 지속될 시험을 치를 몸 상태가 아니다. 시험을 앞두고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안타깝다.


월요일부터 아프기 시작했을 때 미리 취소를 했더라면 시험비를 고스란히 날리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그렇다고 억지로 시험장에 나가 더 큰 고통과 스트레스를 짊어지느니, 차라리 그 비용을 날리더라도 지금 컨디션 회복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걸 마음 한구석에서 알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시험을 미리 신청해 놓고 기다렸는데, 늘 계획과 달리 문제는 갑자기 찾아온다. '모든 아픔은 한꺼번에 모아두었다가 몰려온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이럴 때 가장 빠른 회복 방법은 오히려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쉬는 것이다. 다가올 금요일과 일요일의 온라인 일정과 다음 주에 중요한 스케줄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조급함보다 휴식이 절실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이다.


막상 시험을 미루고 나니 문득 '왜 나에게는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매번 온 힘과 정성을 다해야 겨우 하나씩 문이 열린다. 일하는 일정 때문도 아닌 순전히 내 몸이 아파 미루게 된 것이니 더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마저 든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처럼』을 쓴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기억해 본다.

“삶에서 때때로 우리는 잠시 멈추어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바로 잠시 멈추고 돌아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일지도 모른다. 시험 준비도 사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시험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니, 내 스스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내일 시험을 보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자, 놀랍게도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무거움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낀다. 얼마나 많은 부담과 긴장을 혼자서 안고 있었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아프고 시험까지 미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겨 보자는 결심을 하니 울그락불그락 불편했던 마음과 표정도 한결 차분해진다.


삶을 살다 보면 이렇게 무언가를 연기하거나 때로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일이든 사람이든 혹은 기대하던 소망이든 간에, 그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고 씁쓸함이 따라오기 쉽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도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이 벌어지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느냐'는 내 마음의 태도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어깨의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천천히 글로 풀어내다 보니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위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겪는 아픔과 실망도 결국 지나갈 것이며, 내 마음을 살피고 충분한 휴식을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언제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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