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Work is Disgusting

캐나다 학생비자로 미대에서 살아남기 2-2

by 정하서


언제 고향을 떠났다는 걸 느껴요?




"네 작품은 역겨워."


70대 할아버지 교수님이었어요. 2학년 Typography (서체나 글자 배치 및 구성 디자인) 이었고 인기가 많고 좋은 평이 자자하신 분이라 수강신청 때 먼저 골라 들어간 수업이기도 했죠. 어리바리한 동양인 여자애가 매 수업마다 앞자리에 앉긴 하는데 계속 타자를 치고 가끔 핸드폰을 만지기도 하니 좋게 보이진 않았을 것 같아요. 영어 단어를 찾느라 검색하는 중이었고, 도저히 모르겠는 부분은 나중에 다시 들어보려고 녹음을 한다는 걸 교수님은 모르셨으니까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과제를 해 갔어요. 언어가 예술의 장벽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언어의 부족함은 대화와 표현 그리고 배움에서 부족함을 만들어낼 뿐이지 예술의 배움을 막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어요.


세 번짼가 네 번째쯤 과제를 발표하는 날이었을 거예요. 알파벳 순으로 발표를 해서 제 순서가 중간이었던 덕에 다른 친구들의 과제를 보고 들을 수 있었는데요, 네 번째로 충격받고 좌절하고 말았죠. 또다시, 제가 제출했던 과제는 교수님의 요구와 전혀 다른 모양새였거든요.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물어봤죠. 내가 이해한 게 맞냐, 좀 가르쳐 줄 수 있냐.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 친구들이 자원봉사자는 아니잖아요. 저는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제 존재는 귀찮은 외국인 학생 정도였을 거예요.


이미 수업이 시작됐고 발표가 진행 중인데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그 자리에서 과제를 다시 해서 다시 제출했죠. 그걸 네 번째 반복하고 있으니 교수님 생각엔 매번 수업에 들어와서야 과제를 제출하는 게으른 학생으로 보였을 거예요. 억울하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과제를 잘못했다는 건 나이로 법적 성인이 되는 순간 변명일 뿐이에요.


"Your work is disgusting."


작게나마 잡답하던 학생들까지 물 끼얹듯 조용해졌어요. 모두가 저를 쳐다봤죠. 놀라 굳어진 공기가 느껴졌어요. 2016년에 있었던 일이니까 이어진 교수님의 지적과 비평은 당연히 기억이 안 나요. 저 말까지 잊어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상처받은 말은 참 잊히지가 않아요, 그렇죠?


자리로 돌아와 다음으로 발표하는 학생을 향해 몸을 향한 뒤 주먹을 꽉 쥐었어요. 울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는 저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니까, 저런 학생이 아닌 걸 나는 아니까요. 그때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학생이 작게 속삭였어요.


"네 작품은 전혀 역겹지 않아."


고마워. 입모양으로 조용히 땡큐를 외쳤죠. 역겨워하는 교수님의 눈빛을 오롯이 느끼긴 했지만 그 당시의 저는 Disgusting 이 얼마나 부적절한 표현인진 몰랐던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난 뒤 두세 명의 학생들이 더 다가와 말해주었거든요.


"교수님이 심했어. 그가 말한 건 잘못됐어."

"나는 네 작품이 좋았어."


제가 왜 이 인터뷰를 좋아하는지 아세요? 잊고 있던 저런 순간들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내가 이방인이었던 나의 반에서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말해주던 순간들도 있었네요.




"100점 만점에 50점이 가장 낮은 점수고 그 의미는 '제출은 했다' 이다."


3학년 선택 교양 수업 중 가구의 역사 수업이었는데 아주 멋지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만큼 학생의 태도도 철저히 평가하는 교수님이었어요. 조별 과제, 에세이 과제, 가구 모형 과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고 그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사실 교수님이 제일 매력적이었지만요.


진짜 열심히 썼거든요? 최소 글자수를 훌쩍 넘기고 레퍼런스도 잘 찾아 넣었고 내용도 잘 구성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어로 에세이를 쓸 시절엔 무조건 A이상을 받았었으니까요. 당연히 늦지 않게 제출했고요. 몇 점 받았게요? 와, 진짜 믿기지가 않아서 계속 봤어요. 50점이라니! 초등학교 받아쓰기도 50점은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입학한 지 일 년이 지나 교수님에게 이메일도 척척 보내던 때였어요. 왜 50점인지 따지는 아, 아니. 여쭤봤죠. 교수님의 답장은 꼭 교수님 같았어요. 리스트로 잘 정리된 이유와 예시까지 보다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더 이상 따지기 보단 더 공부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50점을 인정할 순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옛 생각이 나더라고요. 유얼 워크 이즈 디스커스팅~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할아버지의 목소리보다는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긴 메일이 낫잖아요.


게다가 이 수업은 2학년 초반에 만났던 한국인/한국 출신 친구들과 같이 들었어요. 버블티 한 잔 하며 교수님이 어떻고, 수업이 어떻고, 과제 점수가 어떻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풀어지곤 했죠. 다행히 저 50점 사건 외에는 낮은 점수를 받지 않았으니까 가능했던 분위기였지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에세이는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영어 문법이 엉망일 테고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앞뒤가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기도 했을 거예요. 에잉 그놈의 영어!




이즘부터 영단어를 다시 외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이엘츠 영단어, 토플 영단어 같은 걸 다운받아서 핸드폰에 넣어두고 매번 밀리는 지하철 안에서 공부했죠. 예술은 그 자체의 작품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중요해요.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다가가는지가 정해지니까요. 개인의 자유로움과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캐나다의 수업시간에는 소통과 표현의 방식에 의해 10분 투자한 작품이 10시간 투자한 작품보다 더 많은 피드백을 받기도 했어요.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소통과 표현의 영역이 나의 노력을 덮어버리는 억울함은 정말이지, 10년을 영어를 쓰며 살았어도 모국어가 미치도록 그리워진답니다.


그런데요, 가끔 좀 더 억울해질 때가 있었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네, 진짜예요.